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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Dec 29.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곰출판

글자를 차곡차곡 쌓아 예쁜 문장으로 책이라는 집을 짓는 일을 하는 애인의 책 추천은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늘 서점 중간까지 들어가야 보이는 문학 코너만 뒤적이다가 언젠가는 최신 책을 읽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천받은 책이었다. 우연히 전자책을 이용할 기회가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다운로드하였다. 책 초반을 읽고 나선 국문과와 문예창작학과 출신을 가족 구성원으로 두고 사회학을 전공해 문과의 감수성에 익숙했기에 이과적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내용이 이어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읽어 나갔다.


이야기는 데이비드라는 인물의 생애를 다루면서 시작된다. 데이비드는 어릴 적 꽃을 분류하고 수집하는 일을 사랑했다. 커서는 기독교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다가 루이 아가시라는 당대 유명한 박물학자를 만나서 본격적으로 물고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에 사명감을 가진 사람처럼 된다. 재밌는 점은 단순히 그의 생애를 나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의문, 해석과 같은 글들을 같이 써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물고기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학문적인 길을 닦으면서 결정적인 고난들을 마주한다. 가족과 지인의 죽음, 자연재해로 인한 연구기록의 말살과 같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을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낙천성의 방패"를 세워서 불운을 마주하고 나간다. 저자는 어떻게 그가 그럴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진다. 여기까지 읽고 나는 데이비드라는 학자의 자서전을 읽고 쓴 철학적 에세이쯤 되는 줄 알았다. 


책의 분기점에 앞서 저자는 자신의 삶에 있던 에피소드들을 언급하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사소함, 존재라는 것의 정의 등 철학적인 것들에 대한 빌드업을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예찬에 관한 이상한 낌새는 그가 아내의 사망을 두고 '독살이 아니'라는 선언을 할 때부터였다. 이 이후는 마치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저자의 글에 급속도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인간에다가, 학자 인생의 갈무리를 열성 '우생학'지지자로 끝맺기 때문이다. 이후 내용은 끔찍한 근대사의 우생학 이야기와 '자연의 사다리'를 신념으로 가진 데이비드의 최후까지로 이어진다. 근데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다윈은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고 했고 인간이 만든 생물 종의 사다리는 착각이었다. 분기학자들의 어류가 없다는 설명을 읽고 나서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시했던 사실을 부정하기엔 문과 출신에게도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부분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으로 '어류'를 만들었고 너무나 우리는 당연시했다. 진화의 나무는 인간이 우월한 종으로 존재하기 위해 심은 나무였다. 우생학적 평화주의자이자 물고기 분류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한 데이비드의 연구는 반전됐고 더해서 불명예스러운 학교의 인물로 남겨졌다는 결말에서는 역사가 때론 더 드라마 같다.


종교가 없는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자연 앞에 '너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은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생학 수용소에서 강제 불임시술을 당한 애나에게 저자는 '어떻게 계속 사는 거냐'라고 질문한다. 자칫 무례한 질문으로 보이지만 그 질문에 답한 메리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민들레가 될 수 있다. 우생학적인 관점으로는 역설적이지만 인간은 지구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물고기'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겸손함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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