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상담을 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겠지.
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까?
나의 인생은 아마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영영 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중학교때까지는 공부 잘하는, 영어 잘하는 우수학생으로 거들먹거리다가
뭣도 모르고 입학한 특목고에서 존재의 가치에 의문을 갖게 된 그 순간부터.
그러니까, 14살때까지는 정말 내가 잘난맛에 살았다.
나, 너보다 키도 커.
나, 너보다 영어도 잘해.
나, 너보다 영어, 국어, 수학도 잘해.
17살때부터는 이 모든게 바뀌었다
너, 나보다 키도 크네
너, 나보다 영어도 잘하네.
너희집, 우리집보다 훨씬 근사하네.
너, 유학도 다녀왔어? 와, 대단하다. 부럽다.
내 그릇이 안쓰러울치만큼 작았던 그 17살무렵 나는 왜 이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허무함과 비참함을 느껴야했는지 억울하기만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것도 아닌데. 왜 우리 엄마아빠는 돈이 많지 않고 왜 우리집은 너무 작아서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부끄러운건지, 왜, 왜. 왜 나는 유학도 못가서 영어도 못하고 회화시간에 멍청하게 앉아만 있는건지.
고등학교 3학년, 모두들 수학능력검정시험에 매진할때 나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상담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분의 성함은 "이기라", 당신의 자매,형재들의 이름이 모두 "이기자", "이기리"라는 식이라며 유쾌하게 소개하시던게 기억이 난다.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모두 헤쳐나가고 이기리라는 마음가짐을 갖게끔 부모님께서 지어주셨다고. 불만 투성이었던 나는 "잘나기도 하셨네요."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분이 처음으로 나의 이 안쓰럽고 복잡한 마음에 진단명을 붙여주셨다. "우울증" 혹은 "우울감".
음, 그때부터였나보다. 늘 내게는 우울감이 동반자처럼 함께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울감은 내 곁에 늘, 자연스레 매달려있다.
그렇지만 굳이 나는 이 우울감을 떨쳐내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이 우울감과 동반하는 태도를 갖게 된것이다.
재미있는게, 나는 내가 19살때 인생의 마침표를 금방이라도 찍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가족들, 친구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었고 내일 당장 이 모든것이 끝나도 아쉽거나 슬프지 않을것만 같았다.
내가 시작하고싶지도 않았는데도 시작하게된 이 모든것을, 적어도 내가 마치고 싶을때 마치고 싶었다.
애틋한 아빠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마침표를 찍었을거다.
그렇게 마침표 대신 쉼표를 한번만 더, 다시 한번만 더 찍자는 마음으로 떠난 호주에서 내 인생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나의 작은 그릇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술한잔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어보았더니,
내 안쓰럽고 애잔한 마음이 나만이 갖고 있는게 아니란걸 알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충을 갖고 살고있다는걸.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에 쉼표를 찍는다.
제 1막이 끝나면 제 2막, 3막, 계속해서 이어질 이야기를 써내려가기위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늘 하고 있다면,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다.
나도, 내 마음속에 마침표를 늘 안고 있지만, 쉼표덕에 이 세상 덕을 사실 많이 봤다고.
쉼표를 통해 이 너무나도 넓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세계에 살게된 내 이야기를 전해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