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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15. 2021

낮은 땅, 높은 꿈 (3)

흐로닝언, 혹은 그로닝겐, 들어는 보셨나요?

의도한 건 아니고 네덜란드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경위를 설명하려다 보니까 시리즈물이 되어버렸다. 하도 다사다난해서 한 번에 주욱 쓰기엔 독자가 지루해질 것 같아서 나눠서 써보려고 한 건데, 글을 쓰는 입장인 내게도 과거를 타임라인별로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서도 좋은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자료조사도 하게 되고.


보통 네덜란드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암스테르담이 수도인 것은 알 테고, 지리나 유럽 여행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무역도시 로테르담 (Rotterdam), 혹은 역사시간에 배운 헤이그 특사의 헤이그(Den Haag, the Hague)에 대해 아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한인이 없기로도 유명한 도시인 흐로닝언 (Groningen)으로, 네덜란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사람들이 더 태반일 거다. 가장 북쪽이래 봤자 국토 면적이 한국 총면적의 반쪽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나라이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더치어로 발음하면 '흐로닝언'이지만, 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알파벳이 쓰여있는 대로 발음하면 '그로닝겐'도 될 수 있어서 좀 혼란의 여지가 있다. 나는 그 나라의 도시 이름은 그 나라의 언어에 따라 불러야 한다, 라는 입장이기에 흐로닝언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나는 로마를 영어로 Rome-롬-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이탈리아어 방식으로 Roma-로마-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흔한 흐로닝언 전경 (출처 : (CC BY-SA 4.0) Attribution-ShareAlike 4.0 International)

흐로닝언은 네덜란드의 5대 대학도시 안에 꼽히는데, 도시에 두 개의 대학교가 있다. 하나는 1614년에 설립되어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흐로닝언 연구중심대학교 (Rijksuniversiteit Groningen),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제 실무중심대학교 (Hanzehogeschool)이다. 흔히들 찾아보면 한국으로 치면 일반대학교와 전문대학교 정도의 차이점이라고 하는데, 직접 다니며 공부해보니 그것보다는 공부의 방향성에서의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두 학교 모두 국제경영학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흐로닝언 연구중심대학교에서는 학술적이고 연구적인 공부를 진행함으로써 더 디테일한 이론 수업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한제 실무중심대학교에서는 말 그대로 학생들이 실무를 직접 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조별과제와 실존하는 사업체와의 프로젝트 등을 연결하는 형태이다. 즉,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에서 처럼 흔히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에 맞춰서 입학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자신의 공부스타일에 따라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지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흐로닝언이 학생의 도시로 유명한 이유는 전체 주민 중 대학생이 거의 6만 명으로 거진 25%의 비율을 차지해서도 있지만, 그 많은 학생들이 가진 다양한 국적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흐로닝언 도시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흐로닝언 대학교의 28%, 한제 실무중심대학교의 8.1%가 다국적 학생이라고 한다. 한인들이 다른 도시에 비하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한인학생회에서 이벤트도 열긴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한인학생회도 full time 유학생들보다는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이 더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이러한 점은 내가 이곳에 살면서도 종종 느끼는 장점 그리고 단점이 되었는데, 장점으로는 영어만 할 줄 알아도 정말 사는데 하~나도 지장이 없다는 거고 (2018년 9월 10일에 도착, 9월 27일에 바텐더로 취직했다), 단점은 영어만 해도 문제가 없기에 더치어를 배우고 이 나라에 대해 배우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 배부른 소린가, 싶겠지만 나는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해 믿는 사람으로서, 도착한 날부터 더치어를 배우려고 무던히 노력해왔다. 서툰 더치어로 더듬더듬 얘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완벽 구사 영어 문장들이다. 아, 쫌! 나 노력하는데, 도와주면 안 될까?! 그래도 날 바라보는 시선은 귀여워 죽겠다 (?)라는 식의 "괜찮아, 우리 영어로 대화하자". 인간이라는 게 참 약아빠져서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쉬운 선택지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늘 그 쉬운 길로 빠지기 마련이다.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그래서 나는 이곳 생활 4년 차인데도 더치어를 거의 할 줄 모른다. 그래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요새 더치어를 다시 배우려고 하는데, 영 쉽지가 않다. 머리도 예전처럼 빨리빨리 돌아가지 않는 것 같고. 에휴.


2018년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얼른 이 공부를 해치워버리고 학사학위를 손에 넣으리, 라는 마음이었는데. 4년 차에 정신 차려보니 나는 이제 이곳에 너무 정을 붙여버렸다. 되돌아보니 지난 세월 중에 가장 장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문 도시라는 것도 깨닫게 되면서부터 더 좋아진 것 같다 (우리 엄마 왈 내 사주팔자엔 떠돌이 기질이 있다고 했다). 흐로닝언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유럽여행 시 들러도 나쁘진 않은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일정이 빠듯하다면야 스킵해도 좋지만 말이다. 나는 딱히 뽐낼 것도 없고 엄청나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만의 매력이 넘치는, 흐로닝언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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