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ro Oct 18. 2021

낮은 땅, 높은 꿈 (4)

네덜란드 락다운 이야기

벌써 2021년도 10월 중순이다. 2020년도는 솔직히 코로나로 말할 것도 없이 시간이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갔다. 내 기억으론 한국에서는 2019년 중후반부터 코로나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었었고 네덜란드는 그 심각성과 위기가 2020년 3월에 상륙하여 2020년 여름에야 화제가 되었었다. 아직도 친구들과 2020년 2월에 갔었던 규제가 없었던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페스티벌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멀고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날들이라고. 


아무튼, 나는 그렇게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가던 와중에도 작년 여름에 한국에 한 달 동안 돌아갔었다. 말만 한 달이지 자가격리 2주를 했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나머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한국에 갔던 이유는 첫 번째, 그 전 2년 동안 (2018~2020) 한국에 가지 않았, 아니 못했었기에 가족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금방 잠잠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취소하지 않았던 비행기표가 나중엔 교환 환불이 될 수 없을 때까지 미련하게 버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자가격리는 다른 블로거들이 많이 다뤘듯이 여러 번 코로나 검사도 받고, 담당 공무원님도 배정받으며 뭔가 알 수 없는 죄 수살이 같은 2주를 살았다. 솔직히 말하면 배달의민족과 에어컨, 그리고 넷플릭스를 벗 삼아 버틴 2주가 그리 나쁘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 매주 더 강력한 방역지침을 내리던 시기에도 그냥저냥 네덜란드는 잘 흘러갔던 것 같다. 8월 말이 되어서야 가장 먼저 여름의 꽃인 유럽 전역의 페스티벌들이 줄줄이 취소되더니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클럽을 포함한 디스코텍들, 펍, 주점들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정부지침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후에도 클럽, 페스티벌들은 가장 긴 기간 동안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락다운이 진행되어 테라스를 포함한 식당들도 문을 닫고, 학교 수업들도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것이 10월~11월 즈음이었고 마침내 12월, 네덜란드 정부는 "hard lockdown"조치를 취한다. 그러니까, 필수 상점들인 약국, 식료품점을 제외하곤 모든 곳이 영업을 할 수 없으며 최대 두 명 만을 집에 초대할 수 있고 (그렇다고 경찰이 찾아오거나 하진 않았고, advised-충고 같은 개념이었다), 식료품점에서의 주류 판매를 8시 이후로는 금지시켰다 (아무래도 술집들이 영업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홈파티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UvA, 락다운으로 텅 빈 암스테르담 담 스퀘어 거리

이 하드 락다운이란 게 사실 다른 이웃 국가들인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 비해선 그렇게 엄격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사람 피를 말리는 구석이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나의 모든 일상들이 올스탑 되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전의 일상이라고 하면 학교-일-운동-친구들 만나기-취미 활동하기 등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고 난 그 바쁨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긴 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코로나 전후로 급격히 바뀌었겠지만서도 나는 유난히 '코로나 블루'를 앓기 시작했다. 무료함에 견딜 수 없었고 와르르 무너져버린 루틴의 부재에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우울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심지어 애석하게도 동거하던 남자 친구가 정확히 이 기간 동안 다른 나라로 파견이 되어서 나는 혼자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었다. 


사진 출처: Getty, 상점 내에서는 마스크를 써달라는 표지판인데, 보이다시피 행인들은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이 하드락 다운은 정도에 따라서만 다를 뿐, 계속 진행되어서 올해 여름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이 밉고 미운 락다운 동안 깨닫게 된 것이 몇 개 있다. 

1. 네덜란드 정부는 정말 탄탄하게 정립된 시스템이다. 거의 반년 동안 영업을 하지 못했던 수많은 식당들과 주점들은 정부로부터 지속적으로 보조금을 받았다. 물론 100%는 아니고, 영업 기간이 몇 년 이상이고 평균 수입을 기점으로 어찌어찌 계산해서 보조금이 지급되면, 점주들은 그 보조금을 다시 나누어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결국, 네덜란드 정부는 락다운 동안 내린 지침에 따른 책임을 진 것이다. 세금 많이 낸다고 불만 많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정부 시스템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스페인, 이탈리아를 보고선 불평을 그만두게 되었다.

2. 네덜란드 사람들은 마스크 쓰는 걸 견디질 못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라는 지침이 내려지기 전에도 나는 한국에서 공수한 KF94 마스크를 어디에서나 쓰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눈총 아닌 눈총을 받기도 했고, 지침이 내려온 후에도 턱스크를 수도 없이 봤으며 네덜란드는 한국과는 달리 마스크는 실내에서만 쓰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즉, 길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몇 차례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는 시위도 전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인인 내 입장에선 '아, 그냥 마스크 좀 쓰면 어디가 덧나니?'싶은 마음이었다.

3.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만의 권리 (individual rights)를 목숨보다 중요시 여긴다는 걸 배웠다. 세계적인 문화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여러 번 언급하고 연구해왔듯이,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도드라지는 것은 collectivism (집단주의, 동양)과 individualism (개인주의, 서양)의 차이점이다. 네덜란드는 그 서양 국들 중에서도 유난히 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문화에 속하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에겐 단체의 이익과 보전 (즉, 코로나 확산 방지)은 상관없이 본인 한 사람의 자유나 권리가 침해(마스크를 쓰는 것)되는 것이 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4.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시간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즐긴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돌아보면 이 락다운 동안 정말 한없이 게을러져도 보고, 심심해져도 보고, 늦잠도 거의 매일 자는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루틴을 다시 만들려는 노력으로 요가도 4개월가량 매일 아침 했고 새로운 것들도 배우기 시작했었다. 실제로, 다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게 된 최근, 이 락다운 기간이 조금은 그립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일상으로 돌아온 최근이 난 더 만족스럽다. 지난여름부터는 백신 접종자나 코로나 진단 검사 음성 확인서를 소지한 사람들에 한해서 여행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식당도 문을 열게 되었으며 페스티벌들도 하나, 둘 씩 돌아오고 있다. 옆나라 영국은 올해 중순부터 "with corona (위드 코로나, 코로나와 함께하는 일상)" 정책을 발표했으며 주변 국가들도 그 절차를 따르고 있는 중이다. 아직 네덜란드에서는 주점 영업이 자정까지만 허락되어있기에 그것에 대해 아직까지도 불평이 있는 편이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한국의 예시를 들어준다. 봐봐, 네덜란드 살만하지?

작가의 이전글 낮은 땅, 높은 꿈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