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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19. 2021

네덜란드에서 일자리 구하기 (상)

파트타임 편

이전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네덜란드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구하게 된 계기도 너무 소소한 우연이라 팁이니 뭐니 공유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도있으니까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첫 주, 함께 살던 하우스메이트들(남자 유학생 3명, 나보다 다들 몇 살씩 어려서 누나 누나하고 잘 따랐던 친구들이다)이 밤문화가 어떤지 보여주겠다며 나를 이끌고 시티센터로 향했다. 이끌려 다니면서 한잔 두 잔씩 따라 마시다 보니 어느새 나는 조금 취해있었고 담배를 피우러 나와있던 친구와 함께 서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클럽이나 펍 입구에 보안요원 (security guard 혹은 bouncer)가 한두 명씩 서있는 게 보통인데,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호주나 이탈리아도 그랬듯이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실내에서 문제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끔 늘 상주하는 직원이다. 


그렇게 밖에 서서 들숨날숨 쉬며 정신 차리자, 여기서 취하면 안 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을 때, 문득 그 클럽의 보안요원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며 팔뚝엔 타투가 새겨져 있는 흑인 남성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패기인진 모르겠는데 (아마 취기였겠지) 씩 웃으면서 물었다. 


"너희 혹시 새로운 직원 고용 중이니? 나 지난주에 여기 도착했는데, 알바 구하고 있거든"

"...."

"아님 말고, 나 바텐더 경력도 있고 일 잘해 (바텐더 경력은 사실 3개월밖에 안됐었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하하, 그래?.. 그럼 여기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 보내봐."


그 자리에서 이메일 주소를 받아 핸드폰에 입력해서는 곧장 메일함에 늘 저장되어있던 영문 이력서를 보냈다.

여기에서 교훈 하나, 늘 이력서를 품고 다닐 것 (진짜로 품고 다니란 얘기는 아니고, 항상 업데이트되어있는 이력서를 클라우드에 저장한다던가 하는 늘 준비되어있는 자세는 기회가 예상치 못하게 다가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 바로 보냈어, 봐, 늘 준비되어있지?"

"너 웃기는 애구나, 어디 나라에서 왔어? 중국?"

"아니, 대한민국 (실제로 그냥 Korea가 아닌 South Korea임을 강조했다)."


알고 보니, 그 보안요원이 그 클럽의 바운서 겸 매니저급이었다. 나중에 내게 말해주기를 당당함당돌함이 맘에 들었고 이력서를 바로 그 자리에서 보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도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렇게 네덜란드에서의 나의 첫 직장, Sunny Beach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Sunny Beach는 불가리아에 있는 유명 휴양지인데, 사장님이 그곳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흐로닝언에서도 비슷한 테마의 하와이안풍의 클럽을 연 것이다. 네덜란드의 장점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어 (더치어)를 못하더라도 영어를 충분히 할 줄 안다면 이런 알바 자리를 구하는 게 딱히 어렵진 않다. 얼떨떨한 채로 시작한 파트타임 알바를 나는 2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일하며 지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해냈나, 싶을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는데. 아무래도 클럽이다 보니 보통 이르면 새벽 3~4시, 늦게까지 일하게 되는 날엔 아침 해가 뜨고 나서인 7~8시에 집에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유학생의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해 3~4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다시 수업에 가서 커피와 레드불을 쏟아부으며 버티는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참 재미있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술도 많이 마시고, 춤도 많이 추고. 유학생활 동안 흔히 경험해보지 못할 것들을 장기간 동안 경험했으니, 정말 소중한 기억들이다.


팬데믹 이후로 클럽이 문을 닫게 되며 나도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쉬는 기간 동안 다시 정상적인 수면 생활을 즐기다 보니 다시 밤낮이 바뀐 들쑥날쑥한 생활로 돌아가는 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이 2년의 "경력"으로 이곳저곳 며칠 동안 열리는 페스티벌에서도 바텐딩을 하기도 하고 일의 강도가 현저히 덜하고 쉬운 레스토랑의 바에서 일하기도 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 마음가짐이 네덜란드 생활을 여러모로 쉽게 만들어줬다. 될 테면 되고 안될 테면 말라지. 그냥 맨땅에 헤딩해보는 거다. 네덜란드에서 혹시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아서 헤매고 있는 영혼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1. 이력서는 한국스타일이 아닌 (촌스럽다고 여겨진다) Canva나 Slidesgo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탐 플렛을 찾아서 영어로, 경력은 부풀릴 수 있다면 부풀려라. 거짓말은 하지 말고.

2. 보통 점주들은 이력서를 수도 없이 받지만, 놀랍게도 이 많은 이력서들 중에 정성을 들인 이력서가 그다지 많지 않다. 즉, 잘 나온 사진과 잘 디자인된 이력서만으로도 벌써 50%는 먹고 들어간다.

3.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을 때 어깨 쭉 피고 앉아서 당당히 대답해라. 소심한 태도는 특히 서비스업 분야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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