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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15. 2021

낮은 땅, 높은 꿈 (2)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에 유창하다.

한국인들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꼽는 불편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공중화장실 사용 시에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 10센트나 최대 2유로 동전 잔돈으로 해결 가능한데, 네덜란드는 입구에서 돈을 자판기에 넣듯이 넣으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거나 청소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문 앞에 상주하고 앉아 돈을 직접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마스트리흐트 여행 시 방문했던 클럽에서 놀다가, 화장실을 가려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앞에 앉아계셨다. 알딸딸해져 있던 나는 '오 역시 나이 불문하고 다 같이 노는 음주문화를 가졌나 보군, 역시 유럽이라서 개방적이야.'라고 생각하며 위풍당당하게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Hello, where are you from? You could also pay few cents, if you would like (안녕,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내킨다면 몇 푼 정도는 돈 내고 사용하는 건 어때?)" 갑자기 들려오는 유창한 발음의 완벽한 문장 구사력을 갖춘 영어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그 아주머니 었다.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클러빙을 하는 다른 손님이 아닌 화장실을 관리해주시는 분이었던 거다. 그녀의 유창한 영어에 한번 놀라고 무지했던 나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워 간신히 "Oh God sorry, I'm Korean. (세상에 죄송해요, 전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하곤 1유로를 건네고 후다닥 화장실로 도망쳤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 동안 생각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밀라노나 베니스 같은 관광지로 유명한 대도시에서는 종종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강한 이탈리아 억양에 알아듣기 힘든 게 다반사였다. 가만, 이곳은 심지어 그렇게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잖아? (마스트리흐트는 네덜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호기심이 마구 솟아났다. 문을 열고 나와서 물었다.

"Sorry for earlier, I was shocked somehow. Are you a Dutch? How do you speak English so fluently by the way?"

전에는 죄송했어요, 너무 놀라서 그만. 네덜란드인이세요? 그나저나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하세요?

"Oh, me? I don't think my English is that good. Every Dutch people can speak a bit of English."

나? 나는 내가 영어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모든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알거든.


자리로 돌아온 나는 같이 여행하던 친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곤 되물었다. 다들 나를 놀란 기색으로 쳐다보며 묻는다. "몰랐어?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인 다음으로 영어를 잘하는 유럽인들이야." (그 당시까지만 해도 Brexit 전이어서.. 슬프게도 이제는 영국은 유럽에 속하지 않는다. 즉, 네덜란드인들이 영어를 제일 잘하는 유럽인으로 등극된 것!) 



그렇게 내 인생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나는 그 당시, 이탈리아 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다음에는 어디에서 뭘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탈리아 생활 전까지만 해도 학사학위 등은 종이 쪼가리에 불구하며 진짜 교훈은 인생의 경험에서 배우는 거라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선 치기와 원인을 알 수 없는 쪽팔림을 감추기 위해 떠벌리고 다녔던 것 같다. 살다 보니 종이 쪼가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에 장기적으로 전념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플랜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처음엔 호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인생을 영원히 뒤바꿔버린, 내게는 love-hate의 호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호주는 잠깐 살기에는 좋아 보여도 장기적으로 살아보면  겉에서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보험이나 정부 시스템 같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들이 잘 구축되어있지 않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호주에서의 빈부격차는 커지기만 하고, 대도시의 쓰레기처리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도 종종 해결되지 않은 채 논외되기 일쑤이다. 또 다른 좋은 예로, 실제 코로나 이후 계속적이고 장기적인 락다운 정책들로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한탄을 했었고 세계적으로도 호주의 정책이 꼭 맞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었다. 뭐 학비 비싼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외에도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인 미국, 캐나다, 영국 또한 생활비와 학비가 어마 무시하게 비싸기로 유명했기에 고민이 말이 아니었다. 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건 내 선택지에조차 없는 사항이었다. 한국은 절대 다시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에 유창 하단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그 나이트클럽의 구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서칭 텀은 "English bachelor programme in the Netherlands (영어로 하는 네덜란드에서의 학사 프로그램)" 검색 결과는 수백 건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영어로 공부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학비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저렴했다. 한국에서 사립대학교를 다니는 것과 비슷한 돈으로 외국에서 대학공부를 할 수 있다니!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 길로 나는 부모님께 통보했다. 엄마, 아빠, 나 네덜란드에서 국제경영학을 공부하기로 했어. 


"네덜란드? 거기 히딩크가 그 나라 출신 아닌가? 어디에 있는 나라야? 뭐? 어디라고? 아~ 독일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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