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y, sorry를 달고 사는 나
오늘 아침에도 겪은, 최근에 깨닫게 된 정말 고치고 싶은 나의 말버릇에 대해서 글을 써볼까 한다. 때는 지난여름, 친구들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었을 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북적이는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Sorry, we're so sorry, I'm sorry, sorry, excuse me, excuse us..."
사람들을 지나쳐 겨우 찾은 자리에 앉게 되자 친구들이 웃으며 묻는다.
"넌 뭐가 그렇게 죄송해? 그냥 지나가는 것뿐인데."
"응? 무슨 말이야?"
"쏘리쏘리, 쏘 쏘리, 아임 쏘리... 너, 그 짧은 시간 안에 적어도 열 번은 미안하단 말을 한 것 같아."
헉, 내가 그랬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내가 정말 그랬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게, 뭐가 그렇게 늘 죄송하고 미안한 건지.
나는 자라면서도 '남에게 절대 피해를 끼치지 말 것'을 베이스로 훈육을 받았던 것 같다. 큰소리 내지 말 것, 울지 말 것, 떼쓰지 말 것. 격려보다는 금지와 지시가 더 흔한 방식이었다. 부모님의 질서와 예의범절이 항상 우선순위였던 유교사상을 그대로 흡수하며 자란 나는 어딜 가나 늘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송한데'를 달고 사는 어른이 되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주문을 할 때도 '죄송한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만 주시겠어요?' 라거나 '정말 정말 죄송해요, 바쁘신 것 아는데, 혹시나 시간 있으시면 수저 한벌만 더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식의 구구절절 화법의 경지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영어를 쓴다고 해서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물론 주문할 때 거들먹거리며 'give me that'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권에서나 동양권에서나 정말 무례하게 여겨지니 'could you please...'를 쓰는 것 자체는 논외이지만 앞서 설명한 스페인에서의 일화나 회사생활을 할 때에도 늘 빙빙 돌려 'if you're not too busy (정말 바쁘신 게 아니라면)'을 줄곧 말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문제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빙빙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효율적이지 않다고 여길뿐더러 대체 무슨 말이야, 하며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 커플도 이 문제 때문에 종종 의사소통에 오류가 생길 때도 있었다. 나더러 답답하다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심플하게 말하라고 타이른 적도 있는데, 아마 내가 충청도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나, 이제 미안하단 말 그만 할 거야.
지지난주 저녁식사자리에서 선포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내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는 남자 친구와 친구들에게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과 그게 날 어떻게 깨닫게 만들어줬는지를 열심히 설명해줬다.
"아, 그거 그냥 한 말이었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니, 나 신경 쓰여, 그리고 미안하단 말 그만 하고 싶어. 미안하지도 않고, 계속 미안하다고 하다 보면 정말 미안할 때 그 의미가 전달도 안될 거란 말이야."
"하긴 그건 그렇다. 좋은 생각이야."
고작 몇 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지나치게 'sorry'를 남발하는 것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동료와 탕비실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서로 길이 엉켜 부딪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쏘리를 남발하려는 것을 아차! 싶어 자제하려는데, 중국인 동료가 말한다.
"Oh my God! sorry, so sorry, sorry, sorry!!"
이거, 아무래도 유교에서 유래된 문화 차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