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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25. 2021

외로움 허용치

또다른 일년치 외국살이를 이겨낸 영혼들에게

이역만리 타지살이를 하다 보면 요즘 흔히들 말하는 '현실 자각'타임을 종종 맞게 된다. 이게 무언가 하면은, 어느 날 문득 자려고 누웠을 때 별로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도 않는 엄마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과 고찰이 번뇌처럼 희번뜩 내리치는 것이다. 


이 현자 타임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끔은 그냥 우연히 봤던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막창이나 청국장 같은, 이곳에선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음식들을 본 순간 서러움이 몰려오며 눈물을 흘리고는 가까운 아시안 식료품점에서 꾸역꾸역 그나마 비슷한 식재료들을 사서 막창 대신 삼겹살이라도 굽고, 청국장 대신 된장찌개라도 끓여먹으며 내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 외로움과 헛헛함이 일 년에 세 번 지독하게 찾아오는데, 바로 설날, 크리스마스, 그리고 특히 내 생일 때이다. 종종 누군가가 내 생일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무슨 계획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생일 같은 거 안 챙겨, 나만 있는 생일도 아니고, 다들 있는 생일인데 뭐가 특별하다고"라고 대답한다. 내 생일은 7월 중순으로 한국에서는 가장 더운 휴가기간이어서, 호주에서는 가장 추운 시기여서, 그리고 유럽에서도 모든 학생들이 자기 본가로 돌아가는 학기의 여름방학중이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거창하게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바쁜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께 졸라 생일잔치를 벌이고 싶지 않아 했으니 아마 마지막 '큰'생일파티는 아마 유치원 시절이었겠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와 시기 같은 꼬인 심성인가, 싶기도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나는 아직도 내 생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생일의 특별함과 소중함을 그다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그러고 싶은 날은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굳이 축하를 해야 한다면 그 축하를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닌 그 더운 날 고생한 울 엄마일 것 같고. 특히나 자기 생일을 세상 유난을 떨며 파티며 행세하는 사람들을 견뎌하지 못하기도 한다. 말했듯이, 너만 있는 생일도, 나만 있는 생일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은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낙관적인 친구 M은 이런 비관적인 내게 말했다. 

야, 네가 태어난 자체를 축하한 건 네가 아기 때 이야기고, 지금 축하하는 너의 생일은 네가 또 다른 일 년을 잘 이겨냈기 때문이야.


일 년에 한 번 7월 중순마다 한국에서 기억해주는 친구들과 가족의 축하 카카오톡 메시지에 이유를 콕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가끔은 마음이 외로워진다. 그렇다고 여기에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파트너도 생일만 되면 맛있는 음식에 선물에 여왕대접이니 외로울 필요가 없을 텐데 그래도 여전히 헛헛한 마음으로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따라 할 수가 없는 엄마표 미역국을 끓이려 가스불 앞에 서곤 하면 아,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마음이 물밀듯 몰려온다. 뭔가가 아쉬운듯한 맛의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이제는 혼자 생각한다. '그래도 지난 일 년 잘 버텼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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