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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Oct 26. 2021

공원을 공략하는 여행가

유럽을 여행한다면 공원을 꼭 방문해보세요

하고 많은 네덜란드의 도시들 중에서 왜 굳이 흐로닝언을 선택해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부분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나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하다는 식으로 묻는다. 이탈리아에 거주할 당시 네덜란드 여행을 하게 되며 여기에서 공부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을 때 여러 가지 불확신 한 것들도 무수히 많았지만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 큰 도시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네덜란드의 큰 도시래봤자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정도.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나 광역시들인 부산, 광주에 비해선 사실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여행자로서 방문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은 내게 굉장히 차갑고 쌀쌀맞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남겼었다. 더군다나 호주에서 살 당시 시드니라는 큰 도시의 삶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살았던 이탈리아의 북부의  5,000명의 인구수를 자랑하던 만수에라는 마을은 나의 그 로망을 산산조각 내주며 나 같은 도시 출신은 시골살이가 영 맞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어쨌든 이번에는 대도시와 시골의 중간 정도 되는 중소도시에 살고 싶었다. 


또 다른 네덜란드의 중소도시인 남부의 "마스트리흐트"는 뭐랄까, 중소도시라기보단 소소도시에 가까울 정도여서 후보에는 올랐지만 확신이 없는 상태였고 그곳으로 여행을 할 당시에도 사람들이 동양인 여자인 내게 좀 더 보수적으로 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로 네덜란드 남부지방은 네덜란드 내에서도 꽉막혀있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나중에 살기 시작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스트리흐트의 완전 반대편에 위치한 네덜란드 북부의 흐로닝언을 여행하면서 받은 강렬한 느낌은 바로 "작지만 작지 않은 인터내셔널 한 도시"라는 거였다. 모두가 너무나도 친절했고 가장 중요하게도, 흐로닝언의 중심에 위치한 Noorderplantsoen이라는 공원에 나는 매료되었다.


가을의 Noorderplantseon (출처: VisitGroningen)

한국어로 어떻게 써야 할지조차도 망설여지는 이 긴 이름(아마... 놀던플라쭌? 정도로 발음될 거 같다)은 영어로는 northern public green으로 해석이 되는데, 아마 도시의 살짝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공원은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전쟁을 겪어낸 의미 있는 장소이지만 가장 중요하게도, 해를 보기가 힘든 이 나라에서 해님이 반짝 뜨는 날이면 모두가 너도나도 향해서 피크닉도 즐기고 그냥 낮잠도 자기도 하는, 도시를 품어준다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삭막한 도시 출신의 내게는 도심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거에 한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즐긴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사진에 보이는 계단에 앉아 연못과 분수를 바라보며 와, 여기 진짜 예쁘다 감탄했다. 열심히 조깅을 하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와, 이런 곳에서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기분은 어떨까? 싶기도 했다. 그때 나는 자연스레 깨달았다. 여기 살고 싶다.


바르셀로나의 Ciutella 공원, 여기도 너무너무 예뻐서 3~4시간은 그냥 앉아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내가 흐로닝언에 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처럼 나는 다른 도시나 나라들을 여행할 때 꼭 공원에 방문하는 편이다. 시드니에 살 때도 하이드파크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고 스페인이나 폴란드를 여행할 때에도 도시에 한두 군데는 반드시 있는 공원에 그냥 앉아 있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나 여행객들은 유럽에 여행을 오게 되면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봐야 한다는, 흔히 말해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명 관광지만 공략하는 게 흔한 레퍼토리. 하지만 나는 정말 그 도시를 느끼고 경험하고 싶다면 공원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 틈을 내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직장인들, 돗자리도 없이 잔디 위에 드러누워 수다 떠는 혈기왕성한 대학생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가족들 등등 그곳을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생활방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왜 이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지에 대한 이유들이 느껴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려 떠나는 여행에, 촘촘하게 짜여진 스케줄을 벗어나 잠깐 여유를 가지는 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 꼭 공원에 방문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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