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crazy cat lady
벌써 우리 집 고양이 덱스터와 함께 살게 된 지도 일 년이 훌쩍 넘었다. 고양이는 참 요물이라 처음엔 설마 싶었던 일들이 점점 반복되면서 얘 정말 사람 말을 알아듣나, 싶을 정도로 인간스러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날이 갈수록 수다스러워져서 퇴근 후 돌아오면 쫓아다니며 먀먀 대며 잔소리를 한다던가, 평일 아침에는 7시 반이면 깨워서 아침을 요구하다가도 주말만 되면 어떻게 알아채고는 9시 반이나 10시까지는 기다려주는 아량을 베푼다던가,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방바닥 한가운데에 벌렁 드러누워 취객처럼 배를 드러내고 길 한복판을 가로막는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에도 썼듯이,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불과 일 년 안에 지나가는 고양이만 봐도 어쩔 줄을 몰라 쭛쭛쯧쯧 별의별 소리를 내며 관심을 구걸하고, 어쩌다가 사교적인 고양이들을 만나면 하염없이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그릉그릉 소리를 들으며 힐링을 한다. 그러다가도 희번뜩 아, 우리 집 고양이가 기다리는데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돌아오면 비몽사몽 자다가도 후다닥 뛰어나와 야옹야옹 잔소리를 하는 우리 고양이의 몸통에 얼굴을 묻고 심호흡을 깊-게 들이쉰다. 집고양이들 특유의 고소한 냄새와 잘 마른빨래 냄새가 콧구멍을 타고 들어온다. 하, 이제 오늘 하루 고된 날의 스트레스는 다 흘려보냈다.
서양권에서는 Crazy cat lady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어로 딱히 잘 번역이 되지 않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 뉘앙스는 보통 나이가 꽤 있는 조금은 괴팍한 성격의 여성이 혼자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데리고 살며 모닥불 앞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게 그~렇게 나쁘게 들리진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자신의 고양이들과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 다는 걸 놀리려는 의도 같은데, 이점에 기분 상해할 애묘인들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나부터도 만약 우리 고양이와 사교활동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우리 고양이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들을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다. MBTI에서도 극강의 E성향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주말엔 집 밖으로 꼭 나돌아야지만 주말을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우리 고양이를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줄줄이 끝도 없이 적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은 생명체가 주는 벅참과 뭉클함 아닐까 싶다.
고양이는 강아지들과 달리 바디랭귀지가 고요한 편이다. 즉,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른다면 고양이 나름대로 날 보고 반갑다고 온몸으로 말해도 인간으로서는 잘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심지어 이것도 냥바냥, 고양이에 따라 달라서 유튜브나 검색을 해봐도 내 고양이를 이해할 수 없어 고군분투하는 집사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루하루 내 고양이의 표현법을 배우는 즐거움에, 그리고 그 표현이 내 고양이에겐 최대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덱스터가 내게 소중한 만큼 내 고양이의 세계 속의 나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크레이지 캣 레이디가 되어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내 고양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지내게 되면서 집안의 인테리어고 뭐고 고양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도 있지만, 또 작은 소품들까지도 고양이 맞춤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덱스터를 닮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물건이 보이기만 한다면 사모으기까지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지인들은 고개를 젓는다. 너, 크레이지 캣 레이디가 되어가는구나! 그럼 난 씩 웃으며 얘기한다. 그거, 나한텐 칭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