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시국에
매일매일 작성하던 포스팅을 잠깐 쉬게 된 건, 지난 2주간 한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2020년에 이어서 2021년에도 한국에 갔으니 3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던 호주에 살 적에 비하면 아주 감지덕지, 형편이 많이 나아지긴 했다.
올해에는 한국 입국 시 해외 예방접종 완료자는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아주 황송한 제도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짧게나마 다녀올 수 있었다. 2주 자가격리가 의무였던 작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무튼 나는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까지도 엄청난 불안증을 겪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정책에 내가 다 필요한 서류는 챙겼는지 열 번은 넘게 확인해도 어쩐지 불안하기만 했다. 공항에서 서류가 정확하지 않다고 빠꾸(?)당하는 악몽까지 꿨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찌어찌해서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발권이 되고 탑승까지도 문제없었다. 헬싱키에서 경유를 하며 띵가띵가 시간도 보내고, 집에서 출발한 시간과 대기시간을 모두 합해 장장 20시간에 달하는 여행 끝. 드디어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시간으로 아침 6시 도착 비행기였는데 탑승객들은 거의 한국인들이었고 나는 한국인들의 빠릿빠릿하고 질서 정연한 국민성에 감탄을 연발하며 '자가격리 면제자'줄에 섰다.
준비해온 PCR 음성 확인서, 자가격리 면제서 4부, 백신 접종증명서 영문을 손에 꼭 쥐고 기다렸더니 방호복을 입으신 공무원들께서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문장을 나열해주셨는데 너무 말이 빨라서 어버버 했다. 한국어를 너무 안 쓰다 보니 듣기 실력이 형편없어진 것이다. 말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도착한 시간부터 24시간 이내에 관할보건소에 가서 PCR검사를 한번 더 받으라는게 요지였지만 문제는 내가 도착한 날이 토요일 새벽 6시, 짐을 찾고 기차를 타고 고향집까지 가면 보건소가 문을 닫을 것 같고. 다시 문을 여는 일요일 9시는 24시간이 경과한 후 일텐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걸 묻고 싶었는데 이 말이 안 나와서 한참을 더듬거리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았다. 담당자분은 한숨을 푹 쉬시며 담당 보건소에 전화해보는 게 가장 빠를 거라는 답변에 '저.. 한국 전화번호가 없어서요..'라고 답했다. 아오, 눈치보여.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개통한 핸드폰이 없으면 정말 정말 정말 너무, 진짜 심각하게 불편하다. 뭘 하려고 해도 본인인증을 하라는 이 '본인인증의 늪'에 빠지게 된다. 온라인 개통이나 편의점에서 유심칩을 사서 개통하려고 해도 '본인인증'이 가능한 '한국 계좌번호'나 '공인인증서'로 또 그놈의 인증을 하란다. 아오... 아무튼 나는 우리 언니가 보건소에 전화해줘서 해결해주긴 했지만,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은 어쩌란 걸까, 싶었다.
줄줄이 서있는 공무원과 군인들의 안내를 따라 파도에 휩쓸리거나 혹은 떠밀리듯이 걷다 보면 어느새 짐 찾는 곳에 나와있다. 작년에 비하면 정말 너무 수월해서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짐도 금방 나와서 얼른 챙긴 뒤에 출국장 밖으로 나가보니 자가격리 면제자는 그냥 거기서부터 완전 자유다. 광명역까지 가는 직통열차는 이제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여 공. 항. 철. 도. 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KTX를 탔다. 이 모든 게 2시간 안에 해결됐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잊고 살던 내게는 머리가 핑핑, 눈알이 뱅뱅 도는 경험이었다. 나, 괜찮을까? 전철에 앉아 마른 목을 축이려 물을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살짝 내리려는데 사람들의 눈총이 느껴진다. 큰 캐리어에는 '자가격리 면제 대중교통 가능자'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데다가 머리가 산발인, 누가 봐도 해외에서 입국한 여자가 마스크를 벗으려는 게 싫은 거다. 서둘러 마스크를 다시 올리고 나는 그 길로 고향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