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만 내게 역마살이 꼈음이 분명하다 했다.
가장 처음 집을 떠난 것은 내가 한국 나이 17살, 그러니까 만 16살 때였다. 살던 도시의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학교가 내가 살던 동네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해있어서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기숙사에 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다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뭔가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에 들떴던 것 같다. 기숙사도 사실은 다른 한 명의 룸메이트와 공유했기 때문에 완전히 프라이빗하진 않았지만, 당시 우리 집엔 내 침대도 없었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주어진 개인 침대, 개인 책상, 개인 옷장 등등 다 내 거!라는 게 가장 신났던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3년을 기숙사에서 지낸 뒤 입학한 대학교마저도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계속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복잡했던 가정환경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배경이 된 것 같다. 실제로 고등학교-대학교 때를 계기로 나는 영영 본가를 떠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와는 조금 달랐던 게 나 포함 4명이서 함께 써야 했던 기숙사는 좀 더 불편했지만 그래도 공동생활이라는 틀 안에 익숙해졌던 나는 무난하게 잘 지냈었다. 그러다가 현실에 맞서는 게 두려워 도망치듯 가게 된 호주에서도 나는 계속 한 방을 다른 사람과 나눠 쓰는 생활을 지속했다. 어렸을 때도 언니와 방을 함께 쓰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딱히 불만을 가진다거나 혼자 살고 싶어 죽겠다, 싶진 않았던 것 같다.
호주를 떠나온 이후에는 다시 본가로 잠시 돌아와 살았을 때는 방이랄 것도 없는, 이제는 옷방으로 바뀌어버린 작은방에서 이불을 깔고 자며 생활했었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나는 벽장 안에 사는 해리포터 같은 삶을 산다고 말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약간 자조적인 농담이 섞여있었던 걸로 볼 수 있겠다. 옷 방안에 일자로 주욱 누우면 공간이 꽉 차는 곳에서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아,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로 떠났다. 무작정 떠난 것도 아니고 무려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대전-서울을 오가며 이탈리아 어학원에서 이탈리어도 단기간 속성으로 배웠다. 그리고 저녁엔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지금 다시 그대로 해보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어디에 홀린 듯이 했었던 것 같다. 왜 하필 이탈리아였냐고 묻는다면, 그 당시에 믿었던 사랑을 좇아가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이탈리아에서는 조금 더 호화스러운 삶을 살았다. 2층 집에 방이 하나, 거실이 두 개인 좀 이상스러운 구조의 집이었는데 리모델링을 깔끔하게 해서 냉방, 난방이 잘 되고 물도 잘 나오는 아주 좋은 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집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내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을 쫓아왔지만 내 개인의 발전성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 심지어 인프라마저도 전혀 없는 곳에서 외로움과 우울감에 고통받다가 결국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번엔 네덜란드로 왔다. 이번엔 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고, 부모님의 기나긴 질책과 훈계가 담긴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겪으며 이번엔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마음가짐부터 그 전과는 매우 달랐다. 우선 한국에 있는 게 너무너무 답답했고 계속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했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더라도 꼭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더 중요한 것은, 본가에서도 나는 내가 '집'에있다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질 못했다. 마치 불청객 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