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도 뿌리내리고 싶다.
처음 네덜란드에 오게 되었을 때만 해도 정말 공부 과정만 끝내면 다른 나라로 이주하려고 했다. 캐나다, 호주 혹은 영국. 어디가 되었든 내가 할 줄 아는 언어인 나라에서 직장을 가지고 어떻게든 살아갈 작정이었다. 네덜란드에 이렇게 마음을 붙이고 정을 붙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 거주하게 된 기간이 길어지며 어라- 하다 보니 벌써 4년 차. 내년이면 공부 과정도 끝나고 예전의 나였다면 벌써부터 다음 목적지를 정하느라 매일같이 눈에 불을 켜고 검색을 하고 있었을 거다.
이런 떠돌이 인생을 살아온 내게 네덜란드,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주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있다.
1. 청소년기 이후로 처음으로 한 곳에서 3년 이상을 살아본 도시
말 그대로 나는 기숙사 생활이며 룸 셰어 생활이며 늘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이사를 다녔다. 그 덕에 짐을 싸고 푸는 데에는 도가 텄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았다. 그래야 짐 싸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소 그 자체에 정을 붙이기를 어려워했다. 살아왔던 도시들을 떠올려봐도 아-그때 이랬었지, 뿐이고 향수나 그리움을 갖지는 않았는데.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흐로닝언은 뭔가 좀 다르다. 뭐가 다른지 정확히 설명하긴 조금 힘든데, 도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 같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될 것은 네덜란드는 전혀 따뜻한 나라가 아니고 네덜란드인들도 꽤나 직설적이기 때문에 상처 받기가 쉽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곳의 매력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일정 시간을 지내다 보면 그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도 직설적인 것 같지만 차라리 가식적인 것보단 낫다. 적응하느라 바빴던 첫 번째 해가 지나고 (보통 같았으면 이미 도시 이동을 했을 시기인데, 아마 권태기를 잘 보낸 듯하다.) 2년 차부터는 나만의 단골집, 나만의 산책길 등등 '나만의' 타이틀이 붙은 장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3년 차가 되었을 때는 이제 이곳이 내가 정말 사는 곳이 맞는구나,를 넘어서 내가 이곳에 산다는 게 자랑스러워지기도 했다.
2. 만나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중심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곳
내가 늘 공허함과 헛헛함에 시달렸던 것은 내 삶의 중심이 안쪽이 아닌 바깥쪽을 향해왔기 때문이란 걸 이곳에서 깨달았다. 굳이 이곳에 살아서 깨달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울하기 그지없는 길고 긴 겨울을 지내며 자아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된다. 그리고 유럽인들 특유의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토론에 가까운 다양한 대화들을 하고 나면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그 타당성, 보존성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한 번쯤은 갖게 된다. 처음엔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을 하며 자라온 내게는 너무 어렵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며, 그 가치 또한 외부에서가 아닌 나 스스로의 내부에서부터 결정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하는 것에 목매달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엔 오고 가며 얕게 사귄 친구들과 그 점점 희미해져 가는 우정 아닌 우정에 상처를 받곤 했는데 이젠 그렇진 않다는 것이다.
3. 잠만 자는 방이 아닌, 내 집, 온전한 내 공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만의 방' 혹은 '나만의 쉼터'라는 용어에 딱히 공감을 하지 못하곤 했다. 그냥 잠깐 살다 지나가는 곳. 침대나 가구들도 단 한 번도 새것을 가진 적이 없었고 보통은 전의 세입자가 사용하던 것을 청소해서 썼었기 때문에 내 것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도 뭔가 애매했다. 나도 이 집, 방을 거쳐간 그 수많은 세입자 중 한명일뿐이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 부엌, 화장실, 침실, 거실, 다이닝룸이 있는 온전한 내 집! 물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파트너와 함께 구입한 집이지만, 어쨌든 이곳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다. 처음 열쇠를 받아 (유럽은 아직도 열쇠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텅 빈 집에 들어갔을 땐 울컥했다. 떠돌이 인생에 이제는 뿌리를 내릴 때가 온 것이다.
영어에서는 집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
'house'는 말 그대로 그냥 지붕이 있고 문이 달린, 거주가 가능한 공간, '주택'을 의미한다.
반면에 'home'은 가족적이고 정서적인 의미가 좀 더 담겨있어 '가정'이라는 의미가 있다.
타플린은 자신의 시에서 '집'은 출신한 곳이 아니라,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곳이며 몇몇 사람들은 그곳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른 이에게서 찾기도 한다고 표현한다. 아름다운 표현이며 깊이 공감이 간다. 이제 내게 흐로닝언이라는 도시는 home의 의미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이제는 공간보다는 나 자신이 가장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거시적으로 관점이 확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