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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Feb 16. 2022

네덜란드 사람들은 커튼을 열어두고 산다.

덕분에 흥미진진한 나의 밤 산책

네덜란드에 살다 보면 네덜란드인 친구들 말고도 다양한 배경을 출신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지인들이 옆 나라인 독일 출신이거나 (내 친구들은 90% 독일인, 5% 네덜란드인, 5% 타국의 이상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 어라 얘는 좀 다른데, 싶어 봤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혹은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같은 동유럽 출신들이다. 그러니까 즉, 내가 유학생활을 하며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이 다 유럽인들이었다.


유럽인이라고 싸잡아 말하기도 좀 민망할 정도로 같은 유럽 안에서도 다양한 문화들이 함께한다. 다만 유럽연합으로 합해짐으로써 교류가 활발해지며 그 문화적 장벽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다. 아무튼, 나는 친구들과 모일 때마다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네덜란드에는 있는, 아니면 그 반대로 우리나라에만 있고 네덜란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얘기 나누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덕분에 나는 글감도 얻고 영감도 얻고 일석이조, 아니 일석사조는 되는 것 같다.



최근에 화두에 오른 것은 대체 왜 네덜란드 사람들은 커튼을 치지 않고 살까? 에 대한 토론이었다. 토론이랄 것도 없이 그냥 와인 한두 잔을 나눠 마시며 본인들의 추측이나 예상컨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의 가설들이 오간 것이긴 했지만. 


먼저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예로 들어보자면 '커튼이 쳐진 창문'을 생각했을 때, 대부분의 거주 형태가 고층빌딩의 아파트 형식이기 때문에 아파트에 설치된 블라인드가 흔히 떠오른다. 만일 주택 형식에 산다고 하면 사방에 꽤나 높은 담벼락이 둘러싸는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고층빌딩의 경우에는 1층이나 2층같이 저층에 사는 사람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불투명한 시트지를 붙이거나 꽤나 촘촘한 블라인드를 설치하여 가림막같이 구성해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고층에 산다고 해도 비슷한 높이의 반대편 빌딩에서 우리 집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에 커튼을 꼭 설치하는 편일 것이다. 단독주택 같은 경우에는 까치발을 해서 내부를 굳이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보기가 어렵다. 만약 우리 동네에 누군가가 까치발을 하고 내 옆집을 쳐다보는 걸 발견이라도 하면 곧장 경찰을 부르거나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이 사람들 커튼이 정말 장식용인가 싶을 정도이다. 어떤 집들은 커튼 자체가 없다. 이 점은 내가 밤 산책을 나설 때에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밤의 도심 산책을 하면 나도 모르게 따뜻한 불빛이 전면으로 비쳐 빛의 차이 덕에 더 명확하게 보이는 낯선 이들의 어쩌면 말 그대로 가장 은밀한 공간에 눈길이 저절로 간다. 


한 벽면 전체가 완전히 책들로 채워진 집, 엄청나게 큰 스크린이 있는 집, 두 개의 안락의자에서 각자 책을 읽고 있는 노부부가 사는 집, 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집, 아직까지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집, 늘 고양이 두 마리가 창가에 앉아있는 집, 엄청나게 멋들어진 조명이 달린 집 등등. 안 보려고 애를 써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는 어쩌다가 그 집안에서 TV 시청 중이던 집주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서 애써 눈을 피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이라 상당히 묘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상하리만치 낯선 느낌임은 분명하다.


이 점이 내게만 흥미로웠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CNN에서도 이를 다루는 기사가 발행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만의 이 특징적인 '커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수많은 문화학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문화는 몇 가지의 이유들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1. 숨길 게 없는데 뭐 어때?
출처: ChurchLeaders

네덜란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숨기려고 커튼을 꽁꽁 치고 쉬쉬하는 모습을 보면 즉 그 사람이 수상한 사람일 것이라는 결론을 낸다. 이를 더 잘 이해하려면 네덜란드의 종교적, 역사적 문화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 현재 네덜란드는 국민의 50% 이상이 무교인 상당히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종교는 아니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바탕이 되는 것은 바로 칼뱅주의, 혹은 칼뱅교(Calvinism)이다. 칼뱅주의는 개혁주의라고도 불리는 개혁교회를 전승하는 교파 중의 하나로서 쉽게 말하면 성경의 해석은 오직 성경에서만 비롯되며, 성경을 읽긴 하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따르려 하지 말고 본인의 해석이 가능할 때까지 그냥 계속 읽어라(Sola Scriptura), 정도가 되겠다. (출처:Why Do The Dutch Never Put Curtains Over Their Windows?, Mehek Kapoor) 

1540년대에 스페인의 침략을 당하며 다양한 스페인 형식의 가톨릭이 강제되었는데, 이의 반발로서 더욱 칼뱅주의는 활발해졌다고 한다.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스페인에 더더욱 저항하며 굳건히 다져진 믿음은 결국 '너의 믿음이 확고하고, 진실하다면 어떠한 숨길 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귀결이 되었다. 이 칼뱅주의는 시간이 흐르며 종교적 의미보다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로 굳혀져 네덜란드인들은 보통 솔직함, 믿음, 특히 말로써 보이는 진솔함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 이제 왜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토록 직설적인지에 대해 이해가 더 간다! 결론적으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바깥에서 생판 남이 내 집안을 들여다보더라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숨길 게 없으니까.


2. 안 그래도 좁은 집이라..

출처: Alex Dudar

네덜란드에 와봤거나 살아봤다면 알만한 사실은 아무래도 좁은 땅덩어리에 역사적으로 높은 인구 밀도를 자랑하다 보니 집들의 크기가 크지가 않다. 평균적으로 백 년 정도가 되는 집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보통 좁고 기다란 사각형 형태의 집들이다. 좁고 높은 집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 모습들이다 보니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버리면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낮에는 바깥 빛을, 밤에는 길거리의 빛을 빌려 조금이라도 더 넓게 느껴지기 위해 커튼을 치지 않는다. 


3. 햇살이 너무 귀해서
출처: Danielle Dolson

네덜란드는 정말 정말 해가 안 뜬다. 그냥 해만 안 뜨는 게 아니라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오고 아무튼 대체적으로 날씨가 우중충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10월부터 3월까지는 꼭 비타민D를 챙겨 먹는다. 그렇지 않으면 해를 못 봐서 비타민이 체내에서 생성이 되지 않아 엄청난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 이 기간 동안에는 슬프게도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도 어둡고, 퇴근 후에 집에 와도 어두운 상황이다. 정말 우울하기가 그지없다. 이렇게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하루라도 해가 뜨는 날이면 너도 나도 웃통을 벗어던지고 공원이던 길가에 던 어떻게든 햇살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해가 뜨는 날이면 어떻게든 집안으로 최대한의 일조량을 높이기 위해서 커튼을 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해가 뜨지 않아도 구름 사이로 뜨는 해를 어떻게든 느껴보려는 노력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집은 두 곳의 거실이 있다. 한 곳은 소파와 TV가 있고 다른 한 곳은 큰 테이블과 냉장고가 있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소파가 있는 곳은 커튼이 있지만 사실 식사를 하는 다른 거실은 나도 커튼이 없는 상태이다. 이사를 오면서 달아야지, 달아야지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정말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내가 2층에 살고 있고, 맞은편에 건물이 아닌 큰 나무들이 있긴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 누구도 우리 집을 굳이 들여다볼까,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을 쓰려고 이것저것 조사를 하다 보니 궁금증도 풀리고 이제 남의 사생활을 '몰래' 엿본다는 죄책감은 덜해질 것 같다. 


우리 동네에 혼자 살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은 매 계절마다 그때의 시즌에 맞춰 부활절이니, 크리스마스니, 다양한 장식들과 조명들로 자신의 창문들을 열심히 꾸미신다. 산책길에 지나갈 때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 보이시며 손을 흔들어주신다. 나도 처음엔 어색하게 손을 들어 보였지만 이제는 나도 먼저 나서서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분을 보면 이 커튼문화는 '창문'이라는 매개채로 어찌 되었든 간에 어떤 형태로든 바깥과 나를 연결하려는 모습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거의 매일 그 집 앞을 지나가며 내적 친분을 쌓는 그 작은 연결고리가 너무 좋기 때문에 이 네덜란드의 문화가 꽤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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