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라군과 플라밍고가 사는 리오 라가르토스
시끌벅적했던 산크리스토발을 떠나 찾아온 곳은 메리다. 멕시코의 여행의 꽃이라고 불리는 유카탄의 주도로 욱스말, 치첸이샤, 등 마야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위치한 도시다. 이제 2주일정도 남은 여행의 마지막을 오로지 관광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찾아온 곳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 6시, 숙소 앞에 대기중이던 미리 신청해 두었던 투어 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리오 라가르토스. 몇 해 전 TV에서 보고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플라밍고가 살고 있는 블루 라군과 핑크 라군이 함께 있는 곳.
워낙 여유로운 여행을 선호하는 지라 관광지만 쏙쏙 빠른 시간 안에 둘러봐야하는 투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메리다에서 왕복 8시간 이상 걸리는 리오 라가르토스에 가기 위해서는 투어를 신청할 수 밖에 없었다.
운이 좋았다. 오늘의 투어 손님은 나와 멕시코 현지인 부부, 단 3명뿐. 여행사 투어 버스가 아닌 가이드 개인 소유의 승용차로 움직이게 되었다. 단 3명뿐인 소규모 투어이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서 더 머무를 수도 있었고 원하지 않는 곳을 건너뛰기도 했다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으로 유카탄을 선택했다던 현지인 부부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낯선 여행자에게 끊임없는 환대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가이드도 마찬가지. 가이드 일을 한지 8년동안 동양인 손님은 처음이라며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었고, 나는 마치 여행사 투어가 아닌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과 동행을 하듯 자연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잇었다.
마리아치 음악을 들으며 끊이지 않는 수다를 나누며 4시간을 달려 리오 라가르토스에 도착했다. 플라밍고 서식지인 핑크라군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란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 바다를 향해 가야했다. 리오 라가르토스의 란차는 일명 생태투어라고 불릴 정도로 다채로운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악어, 독수리, 펠리칸, 플라밍고까지. 목적지인 핑크라군으로 가는 한시간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핑크 라군은 말 그대로 작품이었다. 왼쪽엔 블루라군, 오른쪽에는 핑크라군. 수백마리의 플라밍고가 느리게 움직이는 광경은 마치 잘 짜 맞추어진 오케스트라 같았다. 지금 보고있는 풍경이 아주 느린 곡이길 바라며 사진을 찍었다. 모래가 뒤섞인 더운 바람이 불었지만 개의치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광경. 세상의 끝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행복감이 밀려왔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민낯. 아마 또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이겠지. 새삼 이번 여행에 감사함을 느꼈다. 카메라를 내려두고 눈 속에 풍경을 담기 위해 애를 썼다. 이 순간 역시 무심하게 흘러가 과거의 여행이 되어가겠지만, 이 순간의 감동만큼은 마음속 깊이 남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