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09_ 노래방 좋아

by 벼르

나의 노래방 사랑의 역사를 말하려면 초등학교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짱이 부르는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재미에 빠진 나는, 미짱이 모임에서 노래방에 갈 때마다 데려가 달라고 조르기에 이르렀다. 미짱은 나 때문에 노래방에 못 간 날도 아주 많다(죄송하지만 노래방에 가면 우리 애가 같이 가자고 하는 통에, 2차는 노래방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야겠습니다). 지극히 칸트적이었던 그때의 미짱에게 거짓말이라는 옵션은 없었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자 미짱은 다른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을 노래방에 넣어놓고(?) 어른들끼리 다른 장소에서 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절반은 우리 나이에 어울리는 노래(네잎 클로버라거나)를, 절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고래고래 불러댔다. 2학년 때 우리 사이에 핫한 노래방 18번은 김건모의 짱가였다. '생각해보니 별로 준 것도 없어, 반지 하나 백 하나 딸랑 구두 두개. 내가 받은 건 그냥 내가 가질게. 니가 준게 어떤 건지 헷갈리니까'라는 가사는 지금 봐도 충격적인데 우리는 막 사랑을 잃은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면서 김건모를 흉내냈다.


이상하게도, 노래방에 대해 가장 강렬히 남은 기억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불러대던 장면이다. 5학년 때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노래방에 왔다면서 조PD의 '친구여'를 그렇게나 불렀다. 얼굴에 솜털밖에 없으면서 '얼굴에 솜털은 흔적도 없구려'라는 가사를 신나서 읊던 그 기억. 심지어 고등학교 때는 왁스의 '황혼의 문턱'이라는 곡에 꽂혀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말도 안 되지만 우리는 그때 전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보면 우스웠겠지만 (그리고 자란 내가 봐도 조금은 부끄럽지만) 인생의 쓴맛이 담긴 노래를 부르면 잠시 인생을 빨리감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코인노래방은 혁신이긴 하다. 어릴 때 가던 커다란 소파가 있는 노래방은 솔직히 혼자 찾기에는 조금 머쓱하다. 코인노래방은 천 원짜리 한 장만 있으면 20분 정도의 시간은 우습게 보내버릴 수 있다. 지금은 선택권이 있어도 방이 커다란 노래방은 잘 찾지 않는다. 사람이 서너 명이 모여도 코인노래방의 좁은 방에 옹기종기 앉아서 노래한다. 그래도 가끔은 크다란 의자가 있던 그 어두컴컴한 노래방이 그립다. 보아와 코요태랑 이정현, 빅마마가 뒤죽박죽 섞여있던 그 방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노래를 쩌렁쩌렁 불러대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글] 108_ 캠프 파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