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14_ 일기

by 벼르

초등학교의 대표적인 숙제였던 일기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는 친구들이야 있겠지만, 강제로 일기를 서서 제출하라고 하는 일은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없어졌다. 주로 타의에 의해 글을 쓰는 나는 이런 변화가 조금은 아쉽다. 일기에 자신의 하루와 기분을 모두 담아내야 하는 원칙이라도 있다면 납득이 가지만, 사실 선생님이 검사하시는 걸 알고 어느 정도 걸러서 쓰지 않나. 필터를 거쳐서 쓰는 글이라도 나의 문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말이다.


나에게 일기는 매년 재밌다 말다 하는 숙제였다. 선생님이 정말 읽는다는 느낌이 들면 일기를 쓰는 일이 재미있었다. 성의 있는 선생님들은 매주 코멘트를 달아 주시고는 했다. 최소한의 읽는다는 표시는 도장의 갯수였다. 일기를 좀 잘 쓴 날에는 별표 도장 세 개, 아무렇게나 내용만 채운 날에는 두 개를 찍어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사실 아예 읽지도 않고 '검'이라는 도장만 찍어주신 선생님들은 애초에 일기 쓰기 숙제를 왜 내주셨는지 모르겠다. 독자가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걸 아는 글쓰기는 정말 괴롭다. 매번 코멘트를 남겨 주시는 선생님들은 보장된 독자였다. 보장된 독자가 있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고, 내가 쓴 글을 나중에 다시 읽는 행복함을 알았다.


6년의 세월 끝에 나는 혼자서도 최대한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난 일기를 쓰는 것보다 내가 다시 읽는 게 더 재미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위해서는 오늘 약간 고생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서,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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