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입맛이라고 부르는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모든 음식에 토마토 케첩을 곁들이고 싶어하고, 부드럽고 달고 끈적한 음식을 좋아하는 입맛이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소위 말하는 '초등학생 입맛'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그래도 쓴 맛과 쓴 향기를 너무 싫어해서 홍삼캔디 향이 나면 지하철 옆 칸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기는 어른이다. 이런 내가 견디지 못하는 야채 세 가지.
1. 오이
라는 글씨를 쓰면서도 싫다. '오싫모(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한참 유행할 때도 나는 탑승하지 못했다. 그 계정을 팔로우하면 계속 모자이크한 오이의 이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자이크를 뚫고 오이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오이 알레르기도 있다. 어릴 때 햇빛에 그을렸던 어느 날 엄마가 오이로 팩을 해주었는데 빨긋한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알게 되었다. 원래부터 오이 맛을 싫어해서 오이를 전부 빼고 먹었어서 몰랐던 알레르기다. 나는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좀 더 심하게 오이에 대해 질겁하기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하는 쪽이 더 편할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꼭 물어본다. 좋아하는데 알레르기가 있는지, 싫어하고 알레르기도 있는지. 당연히 후자다. 난 동생이 생오이를 씹어먹을 때도 질겁하며 식탁의 양 끝에 앉자고 한다. 그리고 부디 본격적으로 씹을 때면 고개를 돌려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오이에서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한다(안 그런 사람들도 있단 말이야?). 하필이면 오이 킬러들 사이에서 혼자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난 미짱과 만짱과 늘짱이 오이를 씹을 때면 숨을 참는다.
오이 하나로 글 하나를 쓸까 싶었을 정도로 나의 오이 혐오는 극심하다. 냉면에도, 모밀에도, 김밥에도 오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나에게는 경계 대상이다. 이런 증상이 너무 유구히 오래되었는지, 내 오랜 친구들은 내 그릇에 오이가 있으면 오이와, 오이가 묻은(?) 부분까지도 모조리 가져간다. 이 맛을 모르다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러면 나는 한없이 감동을 받는다.
2. 피망
하지만 오이 하나로 글을 못 쓴 이유는 피망도 그에 못지 않게 싫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망은 맛이 없어도 파프리카는 맛있다는데 그 둘이 뭐가 다른 건지 난 죽어도 모르겠다. 쓴데다 매운 피망과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매운 파프리카의 차이일까. 그래도 희망적인 건, 피망은 매끈한 부분이 있어서 음식에 매끈한 껍질 부분이 닿도록 누워 있으면 피망만 쏙 뺐을 때 향은 덜 남는다. 하기야 오이도 껍질 부분만 음식에 닿아 있으면 향을 덜 남기겠지만 껍질 째로 오이를 요리에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무튼 난 카레에 당근이고 양파고 단호박이고 다 참을 수 있지만 피망을 넣는 건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피망은 온 군데에 들어가 있는 식재료는 아니라서 경계할 재료가 적긴 하다. 피자를 주문할 때만 추가 요청사항에 쓰면 된다. '파프리카랑 피망 다 빼주세요.' 라고.
3. 그 샐러드에 있는 뾰족뾰족하고 쓴 야채
샐러드는 상큼하고, 달고, 새콤한 맛에 먹는 게 아닌가? 토마토랑 양상추를 신나게 씹다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존재가 있다.
지금 검색하고 왔는데 그 존재의 이름이 샐러리인 것 같다. 그렇게 샐러드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을 해놓고는 그렇게까지 쓴맛이 나다니 죄악이다. 사실 나머지 샐러드 채소는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청경채도 루꼴라도, 비타민도 새싹 채소도 로메인도!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특별히 편식하는 게 아니라 샐러리의 잘못이라고 항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약으로 먹을 것도 아니면서 쓴맛이 나는 음식이 무슨 효용이 있단 말인가? (아메리카노만은 예외다.) 아무튼 쓴맛을 과시하는 야채는 내 식탁에서 모두 퇴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