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사람에 대한 겁이 많이 없어져서, 내가 누군가를 무서워하려면 꽤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어릴 때는 기만 좀 세거나, 짐짓 다른 사람을 위협하려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기만 해도 내가 먼저 쪼그라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은 사례도 몇 차례 만나고, 의외로 소음은 고요함으로 잘 제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무서운 사람'이 나는 이제 별로 무섭지 않다.
두려운 사람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나의 가장 큰 두려움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영원히 떠나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이려면 우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떠나거나 사라지면 내 마음과 인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존재여야만, 내가 두려워할 사람의 전제 조건이 성립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딘가 미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두렵다. 삶에 미련이 없건, 관계에 미련이 없건 간에 언젠가 나를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후련해 보이냐면, 나랑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어떤 슬픔도 작별의 말도 없을 것 같다. 관계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자기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은 그저 이 삶을 궁극적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목표인 사람처럼 보인다.
또 나는 진심이 없는 사람이 무섭다. 진심이 있는 사람은 화를 내더라도 진심이어서 나도 같이 화를 내거나 화를 풀어주는 등 특정한 대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웃고 울면서도 속으로는 진심이 아닌 사람들은 나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자기가 웃으면 내가 기뻐할 거라고 여겨서, 자기가 울면 내가 슬퍼할 거라고 여겨서 도구적으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싫고 무섭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이 말은 우스갯소리로 쓰이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너무 슬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