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지하게 된 사실인데 나는 언니라는 정체성을 좋아한다. 주변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있었던 때는 잘 몰랐는데, 늦은 나이에 새내기로 입학하면서 주변의 거의 모든 친구들이 나를 언니나 누나로 지칭하면서 알게 되었다. 언니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위치가 어찌나 편안하고 내 자리 같은지, 어떨 때는 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언니!' 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도 다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뒤돌아본다.
태어날 때부터 언니였던 사람은 아니지만(생각해보니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짱은 아이 둘을 갖겠다고 처음부터 계획하고 나를 낳았으니 첫째로 자랄 운명이기는 했다. 그리고 언니라는 호칭은 거의 내 이름만큼 많이 불리는, 두 번째 이름이 되어버렸다.
학창 시절이 끝나자마자 알았다. 나는 언니들을 불편해하거나 무서워하고, 내가 언니일 때 편안하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내 동생 나이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저 편안하다. 처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 동기들 빼고는 전부 언니나 오빠였던 그 상황이 나에게 얼마나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마 선배들에게 전혀 악의는 없었겠지만, 나는 그냥 내가 막내인 상황이 진땀이 났다. 그러고 보면 집에서는 늘 첫째인데 아빠가 막내라서, 친척 집에 가면 내가 애매한 막내 축에 속해서 적응을 못 했던 것도 있다. 늘짱은 집에서도 막내, 친가에서는 완전한 막내라서 그럭저럭 제 자리를 찾을 줄 알았다.
언니가 좋은 이유는 우선 같이 놀 수 있는 범주에 확실히 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는 언니랑 논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데, 아는 아주머니랑 논다고 하면 이상하다. 언니는 분명 또래로 느껴져서 친구까지도 될 수 있는 존재다.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같이 놀면서도 언니가 뭘 모르거나 시대에 약간 뒤쳐진대도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열 걸음 뒤에 있으면 안 된다. 딱 한두 걸음만 느려야 으이그, 하면서 친절히 알려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니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돌보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 나는 챙김을 받는 포지션에 존재하는 일이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내가 구멍이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역으로 챙김을 받는 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앞선 예시와 마찬가지로 아는 언니를 챙겨줬다고 하면 어색하지 않지만 아는 아주머니를 챙겨준다고 하면 어딘가 이상하다.
요즘은 언니를 귀엽게 표현하는 '웅니'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원래는 귀엽게 표현하려고 이렇게 변형한 것이겠지만, 내 주변에서는 나와 더 친밀한 친구들이 주로 나를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친구들이 나를 '웅니'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내가 비슷한 느낌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