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38_ 사진

by 벼르

사진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는 내 입장에서, 모든 사진이 미적으로 아름다웠으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물론 사진 100장을 찍어야 한 장 정도가 인물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구도, 색감, 느낌 등 모든 측면에서 빛날 수 있는 사진이 나온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장소에서 두세 장 사진을 찍어 보았을 때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으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겠거니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지, 그 자리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사진이란 어쩌면 보조 기억 장치이다. 그 사진을 보면 찍게 된 맥락이나 그날 기억하고 싶었던 사실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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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사진이 그렇다. 구도, 색감, 명암, 모든 것이 엉망이지만 이 사진을 왜 찍게 되었는지는 기억한다. 십자가가 있는 부분의 건물이 너무 얇아서(?) 종잇장같다는 게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보면 이상하지 않은데 옆에서 보면 정말 이상한 건물이라고 생각났다. 그리고 아빌라의 데레사 생가에서 수녀원으로 이동하던 길이라는 사실, 그 길이 정말 더웠다는 사실이 연쇄적으로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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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이런 사진이 그렇다. 내 동생은 수학과인데 어느 날 친구들과 장을 보다가 만원 단위를 딱 맞춰서 계산하고는 '수학과식 장보기'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과일을 무게로 재서 사고, 주스와 샌드위치가 센트 단위로 끝났는데 계산할 때 보니 3유로였던 장보기의 하루가 있었다. 찍어서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에게도 '나도 수학과식 장보기 해버렸다'고 자랑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갤러리를 보면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아서 기겁할 것이며, 대부분의 사진을 지워버리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못생긴 사진이 가장 킥킥거리며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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