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33_ 외모

설렐 때만 사랑이지만 익숙해야 사랑에 빠져

by 벼르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누군가 묻는다면 정답을 줄줄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취향이 확실하다. 피부는 희면 좋고 미간은 넓은 편이면 예뻐 보인다. 눈 크기는 상관 없지만 쌍꺼풀이 너무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코의 모양은 그리 상관 없지만 너무 길거나 크면 이질감을 느낀다. 갸름한 얼굴보다는 동그란 얼굴형을 좋아하고, 전반적으로 오밀조밀 이목구비가 귀엽되 눈은 시원시원한 느낌을 좋아한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구구절절 적어놓으니 내가 취향 스트라이크 존이 되게 작은 사람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내가 진짜 위에 묘사한 얼굴만 따라다니는 얼빠였으면 이 글은 시작도 안 했다.


지금 내 남자친구나 몇몇 친구들이 그랬듯, 한 눈에 내 취향이다 싶어 옆에 꼭 붙어있게 된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내 친구들은 처음에 낯설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익어 사랑하게 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눈에 걸리적거렸던 짙은 쌍커풀이나 눈에 띄게 뾰족한 턱이, 토끼 이빨이나 주근깨가, 구릿빛 피부와 얇디얇은 입술이, 세 번 네 번 다섯 번, 만남을 거듭할수록 사랑스럽게 눈에 박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되어버린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범주가 되어, 그 사람을 닮은 사람을 발견하면 친해지기도 전부터 반갑다. 나는 얼굴을 세밀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은 아니라서 뭉뚱그려서 그냥 누구 닮은 사람, 하고 퉁쳐 버린다. 최근에도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사촌언니를 닮은 사람이랑 친해졌고, 내가 보기엔 트와이스의 나연이랑 똑같이 생긴 친구도 사귀었다.


나는 얼굴 구분에 매우 약한 사람인데 그나마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좌표가 되어 마음에 콕콕 박혀 있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는 않을 만큼 얼굴을 외울 수 있다. 콕 박힌 지표에 닮은 얼굴을 보면 반사적으로 마음이 반응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꼭 새로워야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익숙한 얼굴을 새로운 사람에게서 찾고 거기서부터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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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미워했던 사람의 얼굴을 닮은 사람을 보면 자꾸 흠칫하게 되는데, 좋아하게 되는 건 그렇다 쳐도 아무 맥락 없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건 조금 곤란해서 싫은 습관(?)이다. 나를 죽도록 괴롭혔었던 언니가 하필 드문 얼굴이 아니어서 새로운 사람을 뭉텅이로 만날 때면 꼭 한 명씩 있는데, 나도 모르게 도망치게 된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이 부분은 고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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