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06_ 나의 인생 드라마: 굿 플레이스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영원한 나의 원픽

by 벼르

굿 플레이스의 세계관은 간단하다. 사람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점수 시스템이 있으며, 최종 합산 점수에 따라 사후에 'Good Place' 즉 좋은 곳, 또는 'Bad Place' 즉 나쁜 곳에 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천국이나 지옥과는 다르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엔 비슷하다.

image?url=https%3A%2F%2Fstatic.onecms.io%2Fwp-content%2Fuploads%2Fsites%2F6%2F2016%2F09%2Fthe-good-place-points-1.jpg 사실 왜 팔꿈치를 긁는 행위가 플러스 점수를 받는지 모르겠음

비도덕적인 행동은 마이너스, 남에게 도움이 되거나 윤리적인 행동은 플러스다. 드라마는 개차반으로 살아온 주인공이 시스템의 오류로 굿 플레이스에 당도하며 시작한다. 벌써 우당탕탕 엉망진창의 기운이 느껴진다면 빙고. 사고의 빈도로 보면 엘리너는 거의 짱구다. 심지어 사고의 스케일은 더 크다.


자세한 내용은 드라마를 직접 보고 확인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공개할 수 없지만(나는 스포일러에 관대한 편인데도 <굿 플레이스>를 스포하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 마이너스 백 점짜리 행동임) 성공적인 영업을 위해서 이 시리즈에서 내가 애정하는 포인트를 나열해보겠다.


1) 사랑스러운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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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여섯 사람이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끄는 주연들이다. 가운데 귀염뽀짝한 크리스틴 벨은 겨울왕국 속 '안나'의 목소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여섯 모두 결함이 있고 사랑스러운 면도 있다. 이런 걸 뻔한 말로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하던가. 주인공이 개차반 인생을 살아왔다고 앞서 말했지만 사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워진다. 뭔가 극 후반부로 갈수록 심정적으로 이 사람의 편이 된달까. 주인공 엘리너 말고도 지금 사진으로 보는데도 여섯 모두 사랑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래 드라마라면 선역도 악역도 있고, 다양하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제시해 놓고 '이 중에 한 명은 네 취향이겠지'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어떻게 <굿 플레이스> 제작자는 등장인물을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둔 것인지.

그리고 이 캐스팅 다양성을 보라. 편견으로 제작한 콘텐츠에서 흑인은 가수이거나 기껏해야 선생님인데 <굿 플레이스>에서는 흑인이 가장 가방끈이 긴, 무려 윤리학 교수로 나온다. 동양인은 항상 수학, 과학 계열의 영재로 나오는 게 지겹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지겨웠다) 이 시리즈에서는 다르다. 가장 왼쪽의 제이슨은.....보면 안다.

크리스틴 벨이 성우라서 그런지 발음이 귀에 쏙쏙 꽂히는 건 덤이다. 엄마는 내가 <굿 플레이스>를 보고 있을 때 옆에서 엘리너의 대사를 듣고는 갑자기 영어가 너무 잘 들려서 자기가 영어를 잘하게 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굿 플레이스>로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2) 큰 서사와 작은 에피소드

5893be55491d729fb10257ebc02e674fef306606.png 엘리너가 자기 집 작다고 불평하는 중인데 내 자취방 일곱 배 정도라 슬퍼지는 장면

어떤 장편의 콘텐츠가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잃지 않으려면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콘텐츠를 따라가는 시청자가 지치지 않으려면 그 사이사이 작은 에피소드의 기승전결도 있어야 한다. 하나의 서사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콘텐츠는 많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비밀의 숲>이 떠오른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결성을 가지는 콘텐츠도 많다. <빅뱅이론>이나 <프렌즈> 등 시트콤 종류가 떠오른다. <굿 플레이스>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러기 위해선 제작자가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려두고 그 사이사이를 밀도 있는 에피소드로 채워야 한다. 도중에 작품이 성공한다고 예정에 없던 시즌을 추가하면 안 된다.

사실 시즌 3에서는 이야기가 길을 잃나 싶기도 했고 너무 중구난방의 소재를 사용한다는 평도 있었다. 나도 사실 중반에 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가서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싶어 불안했다. 그런데 시즌 4(마지막 시즌이다)를 다 보고 나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나는 열린 결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어떤 열린 결말은 정말 작품을 열어 놓고 끝낼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납득이 가는데, 대부분의 열린 결말은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늘어놓다가 길을 잃어서 아무렇게나 끝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모든 복선을 회수하고 시리즈의 문을 꽉 닫은 <굿 플레이스>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던지고 회수한 떡밥이 워낙 많아서, 두 번 세 번 봐도 새롭다. 정말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퍼즐이다.


3) 메시지

3516-jpg.jpg 캡본만 봐도 찡해지는 장면

그래도 이 짧은 인생에 시간을 쪼개가며 드라마를 보면 뭐 남는 건 있어야 기분이 좋으니까. 그 어떤 작품보다도 철학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다는 게 <굿 플레이스>의 최고의 장점이다. 단순한 세계관만 보면 선악 구도가 강조되어 있어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드라마일 것 같지만 저얼대 아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왜 사는지는 됐고,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옳은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사랑에 빠지나? 왜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나? 이 외에도 수많은 삶의 질문을 <굿 플레이스>에서는 던지고, 질문만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답도 제시해준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줘서 좋다. 나는 '걔 그럴 줄 알았다'거나 '사람 안 변한다'는 말에 쉽게 반박하지 못하면서도 좌절을 느낀다. 얼마나 인간이 변하기 어려운지 나도 안다. 다만 그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는 일. 사람을 수없이 잃고 억겁 같은 시간을 쓰고 다시 또다시 그리고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절대악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등을 이 드라마는 가르쳐준다.

무엇보다도 이런 메시지와 교훈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좋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해 드라마를 소비하지, 계몽을 위해 보진 않으니까.


4) 나를 울리고 웃김

nup-175031-1626-jpg-1516218613.jpg 자꾸 이 둘 사진만 올리는 것 같은데 내 최애들 맞음

눈물만 가득한 드라마는 피로하고 웃기만 하는 드라마는 허무하다. 개그와 감동이 적절히 섞인 시리즈가 역시 마음에 든다. 그런 콘텐츠를 나는 단짠단짠 콘텐츠라고 부르는데, 이런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역시 삶이랑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극 속에서도 웃음짓고 웃다가도 금세 슬퍼진다. 인간이니까. 드라마는 환상일지라도 삶을 비교적 정확하게 재현할 때 나는 더 위로받는다.

물론 시즌 1에는 웃음의 비중이 좀 더 높고 시즌 4에는 눈물의 비중이 좀 더 높다. 그것만큼은 삶과 닮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작별하는 일은 언제나 슬프니까, 드라마를 보내줄 때가 가까워져서 점점 슬퍼지는 것이라 치자.


사실 이정도로 좋아하는 컨텐츠에는 후속작을 바라게 된다. 내가 <겨울왕국> 후속작 존버에 성공한 것처럼, <굿 플레이스>도 후속작이...있으면 좋겠지만, 다음 시즌을 바라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작품의 문을 닫아버린 탓에 다음 편을 내놓으라고 조르지도 못한다. 작품이 완벽해서 좋으면서도 서글프달까. 작가의 흔적이라도 다시 느끼려고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보기도 했다(모든 인물이 사랑스러운 건 비슷한데 사실 좀 브나나야말로 이야기가 길을 잃는 느낌이 있어서 보다 중도하차함).

이제 나에게 남은 건 감상평을 나누는 일뿐이다. 가까운 사람 누군가 <굿 플레이스>를 보기 시작한다면 나는 아마 또다시 정주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그치 그치!'를 해주기 위해서다. 사실 나랑 같이 정주행하면 더 좋다. 덕톡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한 회에 20분밖에 안 되니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밥 친구삼아 시도라도 해보기를. 적어도 시즌 1 마지막 화까지는 보고 나서 하차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시즌 1의 마지막 화를 보고 나면 아마 하차할 수 없을 것이다.




간만에 아주 신나게 쓴 글이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드는 게 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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