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05_나를 움직이는 힘

by 벼르

난 혼자서도 생산적인 일을 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못 된다.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글을 쓰고, 오직 자신만이 아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를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타인이다. 맛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요리하고, 잘 썼다는 반응이 좋아서 글을 쓰고, 같이 신나려고 서툰 춤을 춘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도 부탁을 받으면 신나서 하게 된다. 어느 정도냐면 나는 남의 과제를 도와주는 일도 좋아한다. 이미 아는 내용이면 더 좋지만 리서치도 불사한다. 심지어 고맙다는 말도 필요없다. 글 잘 쓴다는 칭찬이나 덕분에 살았다는 말을 들으면 날아갈 것 같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다. 고래는 원래 춤을 추는 동물이 아니다. 고래가 춤을 추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칭찬은 그런 고래까지도 춤추게 만드니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힘이 세단 말인가. 아이에게 과도한 칭찬이 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칭찬으로 행동이 만들어지고 나면 칭찬 없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없어질 거라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나도 칭찬이라는 외적 보상만을 바라고 남을 돕는다면 칭찬해주지 않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을지 모른다.


칭찬이니 감사니 하는 보너스적인 보상은 차치하고 내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건 ‘인지’다. 누군가가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글을 의뢰해 놓고 읽어보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부탁을 해놓고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내 행동을 인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안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남들이 부탁하거나, 남들이 몰라준대도 하는 유일한 행위가 있다. 바로 공부다. 공부는 오히려 남들이 보지 않는 집에서 가장 잘 된다. 왜 나는 공부는 시키지 않아도 하는지 생각해보니 재밌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남들이 내 행동을 인지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재미로 움직이는 인간이구나 싶다.


더 솔직하고 거창하게 말하면 나는 남들도 나로 인해 인지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도울 수 있고 망설임 없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삶의 이유는 못 되어줘도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주는 일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다행히 칭찬은 없을 수 있어도 타인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내가 움직이는 힘을 잃을 일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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