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
기억에 남는 선물이 꼭 마음에 드는 선물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이 황당해서 안 좋은 의미로 더 오래 남기도 한다. 그리고 끔찍한 선물 사건은 보통 연인 사이에서 일어난다. 친구에게는 어느 정도 예의범절의 선이 있어서 상대망이 마음에 들어할 법한 무난한 선물을 하게 된다. 나도 친구에게 받은 선물들은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반짝이는 목걸이, 반지, 스트랩이라거나, 바디로션, 향초 같은 무난한 선택지. 기상천외한 선물은 대부분 애인에게 받았다. 그리고 그 기상천외함은 대부분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해골이 그려진 후드집업이었다. 전 연인은 검정색과 빨간색을 좋아했다. 자기가 좋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검정색과 빨간색 옷만을 입기를 바랐다. 문제는 나는 검정 옷도 빨강 옷도 자의로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옷장을 뒤져 보아도 친구들과 춤출 때 입었던 검정 치마나 아주 오래 전 월드컵에서 한국을 응원할 때 입은 새빨간 반팔 티가 나올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자기 취향의 옷을 사주겠다고 아주 나쁜 결심을 했다. 내 옷장엔 해골도, 빨강도, 검정도, 후드도(후드가 뒤로 젖혀지면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들어 싫어한다), 집업도(살에 스치면 생채기가 나는 게 싫어서) 없었는데 그 모든 걸 합한 옷을 선물받았다. 새까만 바탕에 빨간 장식이 있고, 등짝엔 화려한 해골 그림이 들어간 후드집업이었다. 나는 그 옷이 끔찍하게 싫었는데 심지어 그 옷은 비쌌다. 그는 7만원인가를 주고 내 선물에 거금을 들여 샀다고 자랑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흉물을 그 돈으로 샀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입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상대방이 기뻐할 것 같아서 열심히 입긴 했지만 그 옷을 입는 날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절대 외투를 벗지 않았다.
그 전 연인은 더 괴이한 선물을 주는 취미가 있었다. 화장솜이라거나 잡지를 스크랩한 종이라거나 하여튼 낭만도 실용도 없는 선물을 수도 없이 받았는데, 그 중 가장 황당했던 건 아무래도 300일 기념으로 받은 영화 <300> DVD였다. 반쯤 헐벗은 남자들이 전투하러 가는 그림이 그려진 그 DVD 케이스를 멍하게 봤다. 당연히 우리 집엔 DVD 플레이어도 없었다. 그 친구도 300일에 이런 신박한 선물을 주는 건 자기밖에 없지 않냐며 뿌듯해하는 것이 제법 열받았다.
아, 생각해 보면 특이한데도 나쁘지 않은 선물도 있었다. 성탄을 앞둔 어느 겨울날, 나는 친구 S와 다른 친구 T를 소개해주려고 세 사람이 모인 자리를 만들었다. 셋이 모여서 술을 먹다가 S가 갑자기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아보카도 두 개였다. S는 그것을 T에게 그리고 나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보카도를 주는 사람은 세상에 자기밖에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를 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세 사람의 모임은 그 날 말고는 다시는 성사되지 않았는데, T는 S를 기억하지 못하다가도 왜 그때 겨울에 아보카도 들고 온 애 있잖아, 하면 웃으면서 기억난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 아보카도가 남거나 어쩌다 생겨서 준 게 아니라, 진짜로 우리한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백화점에서 일부러 아보카도를 사왔다고 해서 더 웃겼다. 왜 하필 아보카도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 친구의 아보카도가 불쾌하지 않고 우스운 해프닝으로 지나갔던 이유는 그날 그 친구가 나에게 선물을 줄 어떤 의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친구들끼리 크리스마스 카드는 주고받아도 선물까지는 주고받지 않으니까. 반면 연인의 선물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정도로 근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둘만의 감성이라도 자극하는 것이어야 좋게 남는다. 자기가 좋자고 주는 선물이나 자신의 위트를 자랑하기 위한 선물은 반감만 살 뿐이다. 마음에 들만한 선물에 곁다리로 끼워 넣는 선물이면 모를까, 메인 선물은 상대방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상한 선물을 한 적 있다. 지금의 애인이 전역을 300일 남긴 시점에, 하트 300개를 접어서 그 안에 일일이 솔라씨를 넣어서 선물했다(아마 이 글의 유일한 수신자는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솔라씨 한 박스를 주면 될 것을, 아마 내가 받았다면 이거 접을 시간에 편지 한 줄이라도 더 써주지 생각했을 수도 있다. 굉장히 의외였던 것은 애인이 이 선물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아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가장 인상깊은 선물로 언급한다는 사실이다(분명 더 정성을 들인 선물이 많은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어차피 선물이 마음에 드는 정도는 랜덤하지 않나 싶다. 별로일 것 같은 선물이 의외로 굉장히 좋기도, 분명 마음에 들 거라 생각한 선물이 상대방에겐 최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