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03_( )에 관하여

by 벼르

무지 슬픈 노래를 곱고 아름답게 빚어 부르는 공연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세 시간 동안 오케스트라의 반주와 합창에 귀를 절여 놓았는데

집앞 술집에서 유재하의 지난 날이 흘러나오자 마태수난곡은 하얗게 지워지고 말았어요

다시 못올 지난 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엄마는 유재하 노래를 참 좋아해요

무슨 노래 틀어줄까 하면 만날 유재하 노래를 틀어달란 통에,

어린 날엔 지겹기도 하고, 같은 노래를 저렇게 들어대도 좋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십수년을 보내고 나니 전주 첫 음만 들어도 유재하 노래라고 알아요

찾아 듣진 않는데 이상하죠 밖에서 들으면 그렇게 반가워요

그리고 엄마가 보고싶어요

괜히 코가 매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이 난 척 잰걸음을 걸었어요

금성과 목성이 가장 가까워지는 날이라고 했어요

연인에게 버스에서, 오늘 꼭 집에 가기 전에 금성이랑 목성을 찾아보자고 했었어요

연인은 내가 하늘을 쳐다보니 금성이랑 목성을 찾으려는 줄 알았나봐요

우리는 새파란 시리우스를 찾고 또 가까워 보이는 별 두개를 보면서 저거 봐 저게 금성이랑 목성인가봐

하나는 불그스름하니까 맞겠지 하고 마주보며 고개를 막 끄덕였어요

사실 틀릴 수도 있는 게, 며칠 전 우리는 어느 시골 언덕 위의 집 마당에서

등에 흙이 잔뜩 묻는 것도 모른 채 누워서 별을 보고 있었어요

오리온자리는 쉬운데 카시오페이아는 찾기가 영 어려워서

아무렇게나 더블유 모양으로 별을 긋고 맞네 맞네 했어요

다음날 천문대에서 밤하늘 설명을 들었는데 우리가 찾은 더블유는 전혀 카시오페이아가 아닌 거예요

그래도 상관 없었어요 왜냐면 틀렸다는 민망함보다는 전날 꽉 찬 별하늘을 안고 있었다는 벅찬 기억 때문에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유재하는 가버린 지난날은 다시 올 수 없지만 추억이니까 아름답다고 노래해요

공교롭게도 그 사람도 이미 세상에 없잖아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렇겠죠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일.

오늘 아까 엄마가 보고싶어 눈물이 핑 돌면서는 잠깐 엄마가 야속했어요

엄마가 엄마 또래의, 살아있는 무언가를 좋아했더라면

엄마가 없어질 때쯤 그 대상도 없어지겠거니 할 수 있는데

유재하는 세상에서 사라진지 오래인데도 여기저기서 계속 노래가 들리잖아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그렇겠죠?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엄마를 닮은 나도 그렇겠죠?

어쩌면 그런 일인가봐요 이건


꺼내면 빛이 바랠까 함부로 쓰지도 못하지만

떠올리면 이런 순간이 피어나요

(깨질) 사랑에 함부로 빠지고,

(죽을) 사람을 멋대로 아끼고,

(죽은) 존재도 여전히 그리고,

(떠날) 순간을 맹렬히 붙잡고,

(시들) 마음을 찬란히 밝히는,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정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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