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르 Sep 24. 2023

[별글] 162_ 좋아하는 자연의 소리

  오늘은 성가대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거의 10년 동안 성가대 하나에 마음을 쏟아부으며 내내 같은 연습실에서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고 있다. 겨울에는 연습실에 들어가자마자 난방부터 틀어야 하는데(누군가 30분쯤 미리 가서 틀어놓으면 더 좋다), 일종의 '아랫목'이 존재해서 어떤 구석은 지나칠 정도로 뜨거워지고 어디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냉골이다. 내가 속한 소프라노 파트는 냉골인 위치라, 다들 이불을 하나씩 안고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연습한다. 봄에도 난방은 계속해서 틀어야 한다. 약간은 언덕배기에서 그늘진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우리가 연습하는 장소는 늦게 더워지고 일찍 추워지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무조건 에어컨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까지 뜨겁진 않지만 굉장히 쉽게 습해지고,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모여서 심지어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 열기를 쉽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굉장히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올해 들어서는 오늘 그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바로 연습할 때 잔잔히 창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다. 자연의 소리는 정말 신기하다. 연습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사이렌을 틀면 굉장히 거슬리고 짜증날 것이다. 그런데 풀벌레 소리에도 분명히 음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즈막히 귀뚜라미 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서 불협이라고 느끼거나 짜증나지는 않는다. 백색소음 같은 측면이 있어서 적당히 인지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오늘 연습하면서는 내내 제2의 반주처럼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였는데 가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파도나 바람, 빗소리도 물론 마음을 안정시키는 자연의 소리이지만 사실 난 생명체가 내는 소리가 좋다(매미와 모기, 벌은 예외로 하겠다). 살아있기 때문에 조잘거리는, 나 여기 있어 하고 외치는 듯한 소리가 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어서 좋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인간이 내는 소리도 좋아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예를 들어 한국어나 영어라던가)라면 내용이 먼저 들어와서 괴로워질 때가 많다. 외국에 가면 아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드는 한복판에 서있을 때가 많은데, 그때의 소음은 전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과 활기를 얻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기가 우는 소리도 좋아한다..고는 차마 못 하겠고, 거슬리지 않는 쪽이다. 


  요즘 너무나 그립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는 호주의 laughing bird들이 내는 소리이다. 뭔지 모르겠다면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면 된다.

https://youtu.be/UiMxZIVJjb0?si=x6bCDIUzbOOtrROF

여행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이 새들이 호주에서는, 도심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떼를 지어서 아침마다 웃는다. 사실 처음에는 좀 짜증이 났다. 전혀 일어나려고 의도하지 않은 시간에 깨버린 데다가, 이 소리가 자연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어서 옆집에 사는 누군가가 알람을 잘못 맞춘 것이 아닌지 의심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 중에 다음으로 의심했던 건, 혹시 숙소 주변의 숲에 원숭이가 사는지였다. 둘 다 아니었고 그냥 호주에 흔한 새 떼였다. 그런데 이 특이한 새 소리가 기묘하게도 여행의 기억과 착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를 않는다. 정말 짜증났던 그 소리를 다시 들으러 호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나는 사실 이 새의 울음소리를 꽤 좋아했구나 돌이키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별글] 161_ 멋지고 싶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