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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25. 2023

[별글] 163_ 편지할게요

  올해 종강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편지를 쓰는 일이다. 편지를 쓰고 싶은 욕망을 가진 지 좀 오래 되었다. 중요한 건 용건이나 명분이 없는 편지라는 것이다. 분명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친한 친구인데 생일 편지를 쓰지 않으면 상대방이 서운할까봐 후다닥 쓰는 숙제 같은 편지 말고, 정말 마음이 시켜서 쓰는 편지를 쓰고 싶다. 축하도, 감사도 없이 사랑만 꽉꽉 담은 그런 편지를 말이다.


  포르투갈 순례 기간에, 야외에서 밤을 새던 날에는 몇몇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실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해가 다시 뜨기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몇 사람에게 쓰지 못하고 밤이 끝나 버렸다. 사실 혼자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많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편지지 세트까지 잔뜩 챙겨간 여행이었는데, 그럴 시간이라고는 하루이틀 뿐이었다(그리고 비행기에서도 시간이 나긴 했지만, 가는 길에는 일만 하고 오는 길에는 체력 소진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결국 올해도 쓰고 싶은 편지를 쓰려면 크리스마스와 연하장이 핑계가 될 것 같다. 나는 이유 없이 쓰는 편지일지라도 받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편지라고 받아들일 편지를, 12월 중순부터는 내내 쓰게 될 것 같다. 해가 갈수록 나의 까탈스러움에 나조차 질리고 내 옆을 지키는 사람들이 고맙다. 올해는 꼭 그 감사를 전하고 지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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