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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Oct 04. 2023

[별글] 169_ 고요 갈래?

  교대생 입장에서 정말 반가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교대생이 아니라면 저게 무슨 소리지 싶을 것이다. '고요'는 학교 앞에 있는 그릭 요거트집 <고스트 요거트>의 줄임말로, 그릭 요거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가게이다. 난 그릭요거트의 실체를 몰랐다. 그냥 좀 덜 달고 좀더 꾸덕하고, 은은한 신맛이 나는 요거트를 그릭요거트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러다 처음 '고요 갈래?'라는 질문에 그럴까, 가볼까 하고 나서는 내 요거트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되었다. 작년 봄엔 그 신세계가 너무 놀라웠던 나머지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씩 사주고 다녔다. 그릭요거트 좋아해? 별로 안 싫어하면 오늘 약속에 하나 사다줄게. 우리 학교 명물 요거트가 있거든. 이라는 멘트를 사방에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 이제는 '고요'라는 말을 들으면 'silent'라는 원래의 의미보다도 요거트를 먼저 떠올리고 군침이 도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고스트 요거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허니요거트에 블루베리 콩포트만 올리는 것이다. 아무리 플레인으로도 맛있다지만 허니 한 바퀴를 둘러줘야 요거트의 완성이다. 때로 식사 대용으로 먹을 때는 그래놀라를 올릴 때도 있는데 사실 나에게는 조금 과하다. 다른 사람한테 사줄 때는 1번 콤비 토핑을 주로 올린다. 딸기에 블루베리, 바나나랑 그래놀라까지. 이쯤 되면 안 맛있고는 배기지 못할 수준이다. 난 액체보다는 고체에 가깝게, 꾸덕함을 넘어 점토처럼, 아이스크림처럼 찐득이는 그릭요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맛집 기근인 교대에서 시그니처 같은 가게는 정말 반갑다. 사람들은 교대에 먹을 거 많지 않냐고 하지만 직장인들이 먹을 곳이나 많다. 사실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은 많지 않다고 느낀다. 오직 고스트 요거트만이, 타지에서 놀러온 친구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맛집이다.


  지갑 사정이 여유롭다면 매일이라도 가고 만나는 사람마다 꼬박꼬박 사줄 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쉬워서 더 좋아하게 되는 마음으로, 지나다닐 때마다 그래놀라 볶는 냄새만 맡는다. 직접 그래놀라를 볶는 집이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조금만 신경쓰면 고소하고 달달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먼저 저 질문을 던지기에는 통장 잔고가 나를 째려보는 것 같고, 누군가 내일 내게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고요 갈래?'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럴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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