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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Oct 03. 2023

[별글] 168_ 서울살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산책은 해가 지고 나서 서울대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공부할 사람들은 죄다 도서관 안에 있고 집에 갈 사람들은 이미 집에 가서 그런지 그렇게 한적할 수가 없다. 짝꿍도 데리고 다니는데 산책로의 만족도는 최상이다. 우리 집이 다 별로여도 서울대가 가깝다는 복지라도 있어서 견딜 수 있다. 고요하고 사람 없고 공기 좋고, 어떻게 보면 거의 서울대를 공원처럼 쓰고 있다. 재학생은 아니어도 졸업생이니까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괜히 눈치를 보면서. 


  언젠가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연과 멀어서가 아니라 사람과 너무 가까워서이다. 서울의 인구 밀도는 정말이지 너무하다. 10년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10년 전의 나는 또 그 10년 전보다 사람이 많아졌다고 느꼈는데. 예전에는 명절이면 서울이 말 그대로 텅텅 비었는데 이제는 연휴의 중간 지점에도 지하철에서 앉을 수 없던 어느 날이 있었다. 나는 사람을 피하고 싶어서 끝 칸에 가는데도 그랬다. 평소였으면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들어차니 이 정도면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해도 기운이 빠지고 지친다. 서울에서는 일상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플러스 알파를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울을 벗어나 여행만 가면 '여기서 살고 싶다'를 외치는 나지만, 가장 무난하게 끌렸던 건 대전이었다. 사실 서울을 벗어나면 가장 무서운 건 나와 맞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가장 농촌의 가장 구석진 동네에 귀농하면 일단 평균 연령부터가 나와 한참 동떨어져 있을 것이고, 취향이 맞는 친구를 새로 만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결국 나는 인간관계 때문에 굳이굳이 서울에 붙어있는 걸까 현타가 오면서도, 그게 제일 중요하긴 하다. 원래 있던 친구들을 그 전만큼 못 만나게 될 거라면, 새로운 친구의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도시가 많지 않다. 대전에는 그래도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새로 정착하는 경우도 많아 보였다. 별다른 자연은 없지만, 대전의 적당한 규모의 하천을 끼고 있는 산책로에서 러닝할 때의 적당한 인구 밀도에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결론을 말하면 서울살이는 싫고 서울을 떠나기는 무섭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지만 갑자기 어느 날 일어나보면 우리나라 인구가 전국 곳곳으로 인구밀도가 평등하게 흩뿌려(?)졌으면 좋겠다. 설령 서울에 뿌려지게 되더라도 밀도는 줄어 있을 테니 이득이고, 다른 어느 곳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랜덤한 비율로 내 또래의 친구들이 함께일 테니 견딜 수 있다. 그런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서는 서울에 붙어있는 것이 나의 최선이다. 그리고 그 일상에서 매일매일을 나는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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