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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Oct 08. 2023

[별글] 171_ 기계를 고쳐본 경험

  태생적으로 기계를 잘 고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기계의 구조를 파악하고 쳬계적으로 관리하는 건 재능보다는 노력의 영역으로도 커버될 수 있지만, 그냥 기계가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진짜로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기계의 구조가 궁금해서 라디오를 뜯고, (그러다 혼나기도 하고) 고쳐보기도 하고, 완전히 망가뜨려 보기도 하면서 기계가 돌아가는 생태를 파악한다. 나는 그냥 움직이는 그 모습에 경이로워하면서도 굳이 비밀을 파헤치려 하지는 않는 쪽이었다. 대강 잘 연결해서 어떻게 되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컴맹이라거나 기계치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울면서 하긴 했으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석사 논문을 썼다는 사실이 내가 기계에 완전히 미숙한 사람은 아님을 증명한다. 다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귀찮다. 기계와 관련된 일은 그 특성상,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 많다. 예를 들어서 코딩을 할 때 내가 그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누가 코드를 쳐주는 건 아니다. 결국 내가 한 줄 한 줄 작성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한 줄에서라도 오타가 나면 오류가 나서 눈 빠지게 오류를 찾아야 한다. 물리적으로 기계를 선으로 연결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에는 HDMI 선을 꽂고, 어디에는 USB 선을 꽂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해도 접촉 불량이 나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결국 이론에 이상이 없어도 실제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고 말고, 나는 그 과정에서 질려 버린다. 


  극적으로 기계를 고쳐본 적도 몇 번은 있다. 당장 오늘도 친구들과 모여 축구를 보려는데 빔프로젝터 화면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몇 번 기계를 껐다 켜보고 볼륨을 아예 내렸다가 올려보고 하다보니 어느순간 소리가 났다. 일종의 '고쳤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면서도 전혀 고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왜 갑자기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겠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수업 조교로 있을 때도 컴퓨터가 고장났다며 교수님께 불려간 적이 몇 번 있다. 컴퓨터를 재부팅하고, 이것저것 누르고 문제를 점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고쳐지기는 한다. 하지만 전혀 왜 고쳐졌는지를 모르겠어서 효능감은 여전히 바닥을 친다. 누가 컴퓨터를 잘 하냐고, 기계를 잘 만지냐고 물으면 좀처럼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질 못한다. 


  아마 코딩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텐데, 여기저기 코드를 뜯어고치다 보면 어느 순간 코드가 작동하는 순간이 있다. 심지어 결과값도 정상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작동하는지는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겠지만, 왜인지까지 알아내는 '그 경지'에 다다르려면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아서 미리 포기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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