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르 Nov 12. 2023

[별글] 188_ Classic

  지난 학기 국어 시간이었나, 교수님께서는 고전이라 불리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선은 등장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난 대상일 것. 또 하나는 여전히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을 것.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지금 가치가 없다면 고전이라고 불릴 수 없고, 지금 가치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도 작년에 막 나온 이론이나 작품, 아이디어 등은 고전이라 불릴 수 없다. 나는 늘 고전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고전과 친해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지금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전 소설을 읽으려면 현대어로 된 소설을 읽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말은 하나도 웃기지 않고, 문화나 행동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풍년이 들어 기뻐하는 축제는 요즘으로 치면 크리스마스 파티랑 비슷한 느낌이겠구나-라거나, 저 시대에는 왕을 위하는 마음이 지금으로 치면 가족을 향한 마음만큼이나 크기가 컸구나-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만큼, 애써 이해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인류 보편의 감정이나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다. 고전엔 분명 시대를 넘나드는 빛나는 구석이 있다. 그걸 발견하기까지 세월의 먼지를 치우는 일이 너무 고될 뿐이다. 먼지를 치우다보면 재채기도 나고, 내가 찾으려는 보석이 그정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고전을 소위 말해 '쉽게 읽는', 고전을 해석해주는 책이나 컨텐츠도 많이 있다. 쉽게 읽는 플라톤의 국가론이라거나, 쉽게 읽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이런 식으로(사실 쉽게 읽는 꿈의 해석이라는 건 존재하는지 몰랐는데 심리학의 고전이라 아무 말이나 써본 것이다. 그런데 방금 검색해보니 진짜로 있다!) 말이다. 그런데 이건 지극히 내 관점이지만, 남이 쉽게 읽어주는 고전 읽기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물론 쉽게 읽는 어쩌구~를 쓴 사람도 고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그 감흥을 남들에게도 전하고자 책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의 반짝임은 내 손으로 흙먼지를 파내고 내 눈으로도 직접 그 광경을 목도할 수 있을 때 인식하게 되는 종류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아무리 그 반짝임을 묘사해봤자, 나에게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응, 그렇구나. 넌 그런 반짝임을 발견했구나. 에서 끝나는 감흥 없는 공허한 끄덕임이 될 것이다.


  문제는 반강제성 없이 고전에 손이 쉽사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교양 시간에는 고전 강독 등의 강의가 있는가보다. 올 겨울에는 조금씩이라도 고전에 다가가 내 손으로 흙먼지를 파헤치고 반짝임을 발굴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별글] 187_ 한복과 아메리카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