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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Dec 13. 2023

[별글] 198_ 분노의 힘

  여러 가지 종류의 감정을 그래프 위에 나열하는 방식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에너지의 수준을 한 축으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한 축으로 하는 것이다. x축이 감정가를 나타내어 긍정적 감정이면 오른쪽에, 부정적 감정이면 왼쪽에 표기한다. y축은 에너지의 수준을 나타내어 높은 에너지는 위쪽에, 낮은 에너지를 가진 에너지는 아래쪽에 위치한다. 1사분면(긍정적 감정, 높은 에너지)의 대표적 감정이 환희, 2사분면(긍정적 감정, 낮은 에너지)의 대표적 감정이 평화, 3사분면(부정적 감정, 낮은 에너지)의 대표적 감정이 우울, 4사분면(부정적 감정, 높은 에너지)의 대표적 감정이 분노이다. 


  화가 많으면 분명 인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 게 아닌 일에 분노를 지나치게 자주 표출하는 사람은 일단 인간관계에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을 으레 피곤하다고 여기고 피한다. 대놓고 배척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이 지내기를 꺼린다. 하기는 어떤 사람과 만날 때마다 화나는 이야기만 해야 하면 나같아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극에 달해, 어떤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부처같은 사람이라면? 건강한 공격성도 발휘하지 못하고 허허실실 웃기만 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보다는 차라리 화가 좀 많은 사람과 친구하는 쪽이 편하다. 여기서부터는 아마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분노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나를 지켜야 할 때도 화낼 줄 몰랐고 어딜 가나 순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를 갉아먹더라도 양보하는 편이 편했다. 나는 그런 성향이 경쟁을 싫어하는 내 성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화내지 않고 참고 지나가는 쪽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를 자꾸만 눌러 참다 보니 감정이 우울과 평화만을 오고갈 때가 많았다. 에너지 수준이 높은 감정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성인 초기에 나를 괴롭히던 무기력은 아마 화를 있는 대로 참는 성향과도 관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세상에는 분노할 일이 아주 많았다. 분노에는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바꾸는 힘이 있어서 아주 매력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분노가 세상을 반 걸음씩이라도 바꾸는 걸 계속 지켜보면서 자극받았다. 분노할 때와 참을 때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싫어하는 '화 많은 상태'와, '저런 포인트에서 화낼 줄도 아는 사람'을 분별하게 되었다. 화를 내다 보니 환희나 열정 등, 1사분면에 있는 감정들도 자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분노도 건강한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어떨 때는 화가 몸에 가득해서 지구를 막 흔들어서 뭐라도 떨어뜨리고 싶다. 길 가다 애꿎은 나무를 통째로 뽑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인사이드 아웃>의 장면을 떠올린다. 음, 또 버럭이가 콘솔을 잡았군. 머리에서 스팀이 잔뜩 나오는 버럭이가 마구 버튼을 누르고 소리칠 동안 나는 막 글을 쏟아내기도 하고, 노래 방에 가서 소리를 있는 대로 부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묶여있었던 친구라 가끔은 콘솔을 잡아도 이해해주기로 한다. 내 머릿속 버럭이는 어차피 누워있는 걸 좋아해서, 꼭 필요할 때 아니고는 금방 자리를 비켜줄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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