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5_매년 찾아오는

by 벼르

기다렸어.


사실 좀 원망한 적도 있었다?

너는 진짜로 온다고 생각하면 꼭 달아나더라

아니지, 사실

너는 너의 속도로 한치도 틀림없이

뚜벅

뚜벅

걸어왔지만

너의 기색이 느껴지면, 그래

꼭 걸음을 잠시 멈추더라


우리들만 널 기다린 건 아닌지

조상님들은

입춘이니 경칩이니 네가 온다는 날을 헤아리고

우리는 또 끄덕이며 열심히 달력에 받아적었지만

꼭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우린 발만 동동거리고


근데, 약속했잖아

그리고 넌 매년 지키더라

기약이 없을 뿐

정해진 날짜를 모를 뿐


오늘도 아니겠지 싶어

마음이 꺾이고 꺾여서

춥겠거니 습관처럼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간 어느날

당황스러울 만큼 환한 햇살이 여몄던 지퍼를 내리면 그제서야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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