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를 관찰하기보다는 그냥 큰 그림으로 받아들이고 파악하는 쪽이라 주제를 보고 잠시 당황했다. 도대체 누구에 관한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의 첫사랑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바로 엄마다. 우리 가족은 서로 호칭을 부르는 대신 이름에 '짱'이라는 글자를 붙여 애칭으로 부른다. 가족 구성원의 평등을 위한 수단이랄까. 그러므로 이 글에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대신 미짱이라고 부르겠다.
미짱은 신기한 사람이다. 그 어떤 인구통계학적 집단의 특성으로도 미짱을 묶을 수 없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독신이겠거니 생각하고, 교사로 보는 사람도 드물다. 50대 유자녀 기혼 여성이며 음악 선생님이라는 정보의 전형성에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검정 벙거지 모자에 화장기라고는 없는 맨얼굴, 형형히 살아있는 호랑이같은 눈빛에 온통 무채색의 옷차림, 다 낡은 검정 책가방에 커다란 세월호 리본 하나. 미짱은 그런 차림새로 항상 등산화를 신고 빠르게 걷는다. 이런 미짱을 보고 지하철에서 종종 노인들이 저 사람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실랑이를 벌인다고 한다. 들리라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미짱은 눈이 덜 좋은 대신 귀가 아주 좋아서, 속으로 킥킥대며 그 대화를 다 듣고 있다.
신앙을 언급하지 않고 미짱을 논할 수 없다. 미짱은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미사를 본다. 주로 Y 성당에 가는데 토요일에는 맞는 시간대가 없다며 조금 더 걸어서 M 성당에 간다. 성당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까지 매일 미사를 드리는 열정과 신앙심이 나에게도 언젠가 생기려나, 하면서 컸는데 아무래도 미짱이라서 가능한 듯하다. 가장 놀라운 건 미짱이 생색을 안 낸다는 거다. 나는 만약 내가 매일 새벽 미사에 출석하는 업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은 '내가 매일 새벽 미사를 가잖아~'로 시작하는 말을 할 것 같다. 미짱은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새벽 미사에 출석 도장을 찍어서 그 사실을 아는 건 우리 가족, 그리고 Y 성당의 신부님들 뿐이다(그마저도 하루는 쉰다고 잘못 알고 계실 것이다). 말없이 멍한 미짱에게 말을 걸면 그는 성호경을 긋는다. 비는 시간에도 늘 기도 중이라는 뜻이다.
미짱은 자기가 ENTJ라고 한다. 가끔 그런 면모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미짱 때문에 배웠다. MBTI의 나머지 세 축은 양 극단이 있는 하나의 스펙트럼일지라도, T와 F는 동시에 발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짱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으며 감정이 자주 동화되고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줄줄 흘린다. 동시에 냉철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그의 입체성을 사랑한다.
무채색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색에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다. 미짱은 내가 알록달록하게 입고 다니는 걸 보며 좋아한다. 다만 얼마나 편한지가 그가 옷을 고르는 기준이다. 뭐가 묻어도 티가 안 나고, 입는다기보다 걸친다에 가까울 정도로 헐렁할 것. 어떤 조합으로 입어도 괜찮을 것. 덕분에 나는 검정 옷을 보면 미짱이 떠오르고 검정 옷이 필요할 때는 미짱의 옷장을 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면 내가 보기에는 전부 비슷비슷한데 미짱은 전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검정 천옷 컬렉션이 펼쳐진다. 언젠가는 알라딘 바지가 갖고 싶다며 통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검정 바지를 사왔다. 한번은 짙은 회색의 승복을 선물하자 마르고 닳도록 입고 있다. 하지만 나는 미짱이 올리브 옷을 자주 골랐으면 좋겠다고 몰래 바란다. 그의 퍼스널 컬러에 딱 맞는 색이기 때문이다. 미짱을 데리고 퍼스널 컬러 검사를 받으러 간 날, 나에게는 낡은 군복처럼 보이던 회색 섞인 녹색 천이 미짱에게 걸쳐지자 고급진 올리브 색으로 보이는 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할머니가 될 자신은 있는데 중년이 되는 게 두렵다. 적절한 중년의 롤 모델이 없는데 이것도 다 미짱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소녀와 할머니와, 영적인 어떤 인물을 뒤섞은 사람 같지, 중년의 여인으로 보이는 어떤 스테레오타입적 특성도 없다. 친구들도 나에게 아이 같으면서도 노인 같다고 하지, 성숙한 청년 여성의 모습을 잘 찾지 못한다. 아마 미짱을 빼다박아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