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21_ 살아있으려 애쓰고 있어요

by 벼르

언젠가부터 (사실 분명하게도 그날부터) 허무와 싸우고 있다. 오늘은 심지어 김영민 교수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 읽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 모두 같은 맥에 있다. 매순간을 살아있다는 실감으로 채우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애쓰지 않아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삶' 자체가 산다는 동사의 변형이지 않은가. 나에게 이상적인 삶의 형태란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 보았다.


알람 없이 깨고 싶다. 누군가 내게 와서, 평생 12시 전에 잠들어야 하는 대신 매일 아침에 알람 없이 일어나도 되는 삶을 살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새벽을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새벽은 시끄러워도 즐겁고 고요해도 기쁘다. 하지만, 두시가 넘어가고 나면 다음 날 일어나야 할 시간을 계산하며 흐르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애초에 일찍 자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게 사람이니까. 누군가 나의 아침을 영상으로 찍어서 본다면 나는 아마 아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알람이 울리고 5초도 지나기 전에 몸을 일으켜서 짜증도 없이 알람을 끄는 사람이라서. 내가 조용히 깨는 이유는 아침마다 화내는 대신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지만 나는 내가 욕심이 많아 잠이 부족한 게 가끔 서럽다.


기본소득이 있었으면 한다. 50만원이라도. 기본소득은 매우 과격한 정책으로 여겨지지만 어떤 시점에 우리는 기본소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기계와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아갈 것이라는 반협박을 들으면서, 사람이 부족하니 아이를 낳으라고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는 기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인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일들은 물리적인 생산량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을 것이며 그럼에도 소비할 사람이 필요해 언젠가 기본소득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궁핍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웬만하면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휴식이 충분했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사흘만, 그것도 반나절만 노동하기를 꿈꾼다. 나머지 시간은 운동과 독서와 창작 활동에 쏟아붓고 싶다. 하지만 그런 루틴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공공 휴식 공간이 내 생활 반경에 많았으면 한다. 서울에서는 앉아서 쉬려면 돈을 내고 음료를 시켜야 하며 그마저도 자리가 없을 때가 많다는 트위터의 글을 얼마 전에 보았다.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백 미터마다 하나씩 도서관이나 공공 휴식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의 나는 과외 사이의 빈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걷거나 동선을 이상하게 꼬아 집에 들르곤 한다. 솔직히 시끄러운 음악과 사람 소리가 있는 카페에서는 전혀 휴식할 수 없다.


그래도 요즘의 삶의 질이 꽤 마음에 든다. 가끔은 수업시간에 몰래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나일 수 있는 순간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있으므로 삶이라 부르겠다. 오늘은 내일 아침의 슬픔을 줄이기 위해 열두시 전에 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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