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홍인혜 작가님은 그의 저서 <고르고 고른 말>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소개한다. 그가 단어 올림픽이라고 칭하는 이 게임에서는 어떤 개념을 떠올린 후 본인의 어휘력 범주 안에서 그 개념을 지칭하는 모든 단어를 소환한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중국어의 愛, 영어의 love, 프랑스어의 amour, 독일어의 liebe 등 다양한 단어를 소환해 놓고 어떤 단어가 그 개념의 본질에 가장 어울리는지 겨루는 것이다. 작가님은 작다는 개념에서는 프랑스어 'petit'를, 달이라는 개념에서는 스페인어의 'luna'를 우승 단어(?)로 선정했다고 한다. 여러 언어로 같은 존재를 부르다 보면 특정 언어의 단어가 상대적으로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또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어서 각각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도 많은 고민을 수반했겠지만, 내 생각엔 사람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훨씬 막연하다. 어떤 사람이 될지, 그 사람이 커서 어떤 본질을 가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람만을 담아 이름을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이름이 정해지고 나면 그 이름은 정체성에 찰싹 달라붙는다. 한때는 스무살 무렵에 이름을 그 사람과 어울리게 바꾸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상상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정체성의 연속성을 무시하는 것 같아 곧 폐기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평생 불린다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개명을 하기도 하지만 예전 이름으로 자꾸만 부르는 친구들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첫 이름짓기가 이렇게 중요하다. 아이에게 선택권은 없다. 의사를 물을 수도 없다. 보호자는 아이에게, 본질이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아이가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지을 뿐이다.
겨우 세 글자밖에 안 되는 내 이름이지만 나는 내 이름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글자부터 제일 싫어하는 글자까지 순서가 있다. '별'은 단연 가장 마음에 드는 글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선거에 나가서, '제 이름에 있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반으로 만들겠습니다!'라고 외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나의 본질을 가장 잘 담고있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한'은 글쎄, 좋지도 싫지도 않다. 음료로 치면 토닉워터 같은 글자다. 별 하나 달랑 있으면 너무 특징이 진해질 것 같아 추가한 듯한 글자다. 학창시절 때는 그대로 한자로 직역하면 일성이 된다거나, 동생 이름은 두별이냐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내 이름이 샛별이나 그냥 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기도 했다.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크다는 뜻의 한이라고, 대전의 옛날 이름이 한밭이지 않냐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고 다녔다. 이제는 그때만큼 그 글자가 싫지는 않지만 여전히 있으나마나 아쉽지 않은 글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끝 글자만 가지고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 흔하디 흔한 '김'은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글자이지만 어찌할 수도 없다. 심지어 나의 양친은 동성동본이라 엄마 성으로 바꾼다고 뭐가 바뀌지도 않는다. 그래서 유독 성을 붙여 부르는 걸 싫어한다. 이름을 적는 칸이 있어도 웬만하면 성을 잘 적지 않는다.
그래도 나 정도면 꽤 만족하는 이름이니 성공적이다. 너무 흔해서 한 반에 두세 명씩 있는 이름이나, 너무 독특해서 한국에 한 명뿐일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모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난 한 이름에 친구가 한 명씩만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몰래 갖기도 했다. 내가 워낙 이름에 정체성을 꼭 붙여버리는 사람이라서, 이름 하나를 떠올리면 한 사람의 이미지만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비록 수많은 민지들과 유진이들 때문에 포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친구들의 친구들 중 한별이가 또 있으면 속으로 몰래 질투하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의 유일한 별이고 싶은데.
어쨌든 이름을 붙이고, 부르고, 외운다는 것은 관계를 맺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이다. 고유한 관계를 만들고 싶으면 이름 외에 애칭을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물건에 이름을 붙여 애지중지하기도 한다. 내 짝꿍도 우리가 타고 다니는 (사실 나의 아빠인 만짱 소유의) 자동차를 포니라고 부른다. 자아가 있는 것처럼 기분이 안 좋으면 말을 안 들어서 애증을 담아 붙인 별명이지만 아무튼, 그가 우리 포니, 라고 부를 땐 15년 된 그 차가 갑자기 귀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름을 새로이 붙이는 행위를 한 그 사람도 귀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