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동시에 싫어하는 색은 없다. 나는 푸른 계열이면 초록이 섞여 청록에 가까워져도, 검푸른 빛이 도는 남색에 가까워져도 전반적으로 좋아한다. 반면 붉은 계열이면 오렌지빛을 띠는 다홍도, 짙은 크림색이나 마젠타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노란색의 스펙트럼에선 창백한 레몬색은 가장 좋아하는 색 중 하나이고, 익은 귤 색에 가까울수록 별로다. 갓 태어난 병아리 색은 좋아하고 이마트 가방 색은 별로라고나 할까.
노랑은 상징으로서도 뒤죽박죽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표지판에 쓰이면 경고의 의미가 되지만 봄을 알리는 개나리와 병아리, 유채의 색이기도 하다. 경고와 위험, 귀여움과 새로움이라니. 전혀 연결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물론 모든 색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가진다. 빨강은 열정의 색이면서 분노, 폭력의 색이기도 하다. 파랑은 청량하고 깨끗하지만 우울의 색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정과 분노는 어떤 면에서 같은 선상에 있고, 맑음과 우울은 물로 연결되어 어느 정도 맥락이 있다. 노랑은 황금이었다가, 황사였다가,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였다가, 아픔의 상징으로 쓰인다(황달 등이 부정적인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것 때문에 그렇다고 들었다).
양가적인 감정이 모두 있어서, 나는 딱히 노랑과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왔다. 선택권이 빨강과 노랑이라면 노랑을, 노랑과 파랑이라면 파랑을 고르는 정도의 선호였다. 그러다 어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노랑이 나에게 특별한 색이 되었다. 네 명의 주인공에게 각각 상징색이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상징색이 노랑이었다. 그 캐릭터와 관련된 모든 굿즈가 모조리 노랑으로 나왔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옷으로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드러냈다. 나는 최대한 마음에 드는 노랑 옷으로 옷장을 차곡차곡 채워갔다. 그렇게 한때 노랑은 나에게 가장 특별한 색이 되었다가, 일련의 사건으로 그 게임을 불매하게 되면서 다시 노랑에 대한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은 다시 맥락에 따라 반갑기도, 피하고 싶기도 한 색이 되었다. 봄은 노랑이 반가운 계절이다. 벚꽃보다도 봄을 먼저 알리는 개나리는 새싹보다 먼저 고개를 내밀 때도, 뒤늦게 새싹이 초록 잎을 삐죽 내밀 때도 예쁘다. 어제는 가장 좋아하는 레몬색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개나리 옆을 지날 때 동기들이 보호색이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직은 익어가는 황금빛보다 피어나는 화사함이 좋은 나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