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32_ 잠시나마 달콤한

by 벼르

어릴 때 거짓말을 하면 짜릿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내 유일한 유년기 거짓말의 경험은 짜릿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거짓말을 딱 한 번 해봤다. 피아노 학원에 너무 가기 싫었던 어느날 친구 집에 가서 만화책을 읽으면서, 괜찮은 척했다. 호기롭게 친구에겐 괜찮다고 하고, 친구네 어머니가 걱정하실 때까지 친구의 침대에 누워서 게으름을 피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 말했다. "학원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이었다. 미짱은 학원의 전화를 받았고, 다음날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학원 안 갔냐고. 예방접종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미짱의 눈에는 호랑이 같은 기운이 있어서,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실은 학원에 가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나는 유년기 동안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로 즐거워지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그 이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시간은 너무 길었으며, 신뢰를 잃는다는 부대 비용이 너무 컸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거짓말은 결이 다르다. 나는 요즘도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즐기지는 않는데, 가끔 진실을 말하는 것의 감정적 비용이 더 크게 소모된다 싶을 때는 거짓말을 선택한다. 요즘 내가 특히 자주 하는 거짓말은 떠난 내 친구가 여전히 있는 양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은 없는데, 라는 말을 굳이 하거나 '-ㅆ다' 같은 과거형 어미를 굳이 쓰지 않는다. 어릴 때 거짓말은 두근거리기라도 했는데 어른이 하는 거짓말은 슬프다. 그래도 잠시나마 달콤하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친구가 있구나, 하면서 정말 그 친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대답해주니까.


윤하의 '먹구름'이라는 노래 가사 중엔 거짓말을 표현하는 듯한 구절이 있다. '홀로 남겨진 나는 오늘도 애써 괜찮은 척 펑펑 울어야 해.' 펑펑 우는 게 차라리 괜찮은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울지 않으면 오히려 남들이 걱정할 만한 상황 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가족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으면 걱정을 사거나, 사람들이 흉을 볼 수도 있고, 어쨌든 튀는 행동일 것이다.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니까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상태일 수 있다. 그럴 땐 눈물이 거짓말이다. 울어야 할 것 같으니 울긴 하는데 아직 슬픔 근처에는 도달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거나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마음을 숨기려고 하는 거짓말은 어느 정도 슬픔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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