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41_ Jinx again

by 벼르

나는 흰 양말을 좋아하는데 그냥 민무늬로 희기만 한 양말은 별로이고, 작은 그림이나 끝쪽에 색이 들어가 있는 양말이 좋다. 그러니까 발목 쪽에 분홍색 띠 정도는 괜찮은데 온 양말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다거나, 양말 자체가 보라색이면 내 선택에선 아웃이다. 나에게 양말이란 내가 무엇을 입건 패션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하지만 귀여운 포인트 정도는 있는 게 좋은 정도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발목은 중목 정도로 탄탄해야 하고 발목 부분이 흘러내릴 정도로 느슨해지면 바로 버린다. 내가 양말 이야기를 줄창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가진 유일한 징크스가 양말과 관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양말이 마음에 안 들면 하루종일 신경이 쓰이는 나이다보니 양말을 까다롭게 고르게 되었다. 최근 꽤나 마음에 드는 양말 세트를 찾아 재구매까지 했다. 흰 양말에, 다섯 종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오리, 고래, 유니콘, 공룡, 그리고 기린이 그려진 이 양말 세트를 거의 매일 신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건 유니콘, 제일 별로인 건 공룡이다. 같은 양말에 디자인만 다르기에 신고 지내는 동안은 디자인 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신을 때의 기분은 다르다. 유니콘 양말을 신은 날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공룡 양말을 신는 날은 ... 일단 집히니까 신기는 하는데 왠지 찜찜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일진이 왜 이래, 하는 날은 집에 와서 양말을 벗을 때 보면 꼭 공룡이다. 굳이 좋은 순으로 나열하면 유니콘, 오리, 고래, 기린, 공룡 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열받는 일이 일어났는데, 똑같은 쇼핑몰에서 똑같은 양말 세트를 구매했는데 디자인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전반적으로 귀여운 디자인이 얼빠진 디자인으로 바뀌었는데 특히 오리가 디자인 차이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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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받게도 귀여운 오리 양말을 신을 때는 무난하고 좋은 하루가 이어졌었는데, 어벙한 오리 양말을 신고서는 실수가 연이어 일어났다. 물론 공룡 양말보다는 아니었다.


어제 결승전을 보러 가면서 나도 모르게 공룡 양말을 잡아서, 아차차 하고 다른 양말을 집었는데 위의 오리 양말이었다. 디자인이 달라졌지만 내가 짝을 맞추기 귀찮아서 같이 묶어놓은 것이다. 짝꿍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귀여운 오리 쪽이 오른쪽이야 왼쪽이야! 짝꿍은 귀여운 오리 양말을 왼쪽에 신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지면 오른쪽이었네 하고 통탄할 거라면서 둘이 막 웃었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져버렸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이었네...'하고 힘없이 말했다. 나는 양말 징크스를 더 굳건히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다음엔 아예 안전하게 유니콘 양말을 신고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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