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42_ 좋아하는 문체

by 벼르

일단은 잘 읽히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가독성이 나쁘면 별로인 글이 되어버린다. 음악이나 그림은 장르적 특성상 어차피 모두에게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 각자가 감상하고 싶은 대로 감상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글은 과반의 사람에게 의도와 전혀 반대로 읽히면 대부분 쓴 사람의 잘못이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난해한 글은 (아무리 내가 어렵게 이해해낼 능력이 있다 해도) 별로다.


문장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한 문장을 두 번 읽고 세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은 문장은 아니다. 괜히 만연체를 쓰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기 꼬리를 밟고 넘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대학생 때 교수님들은 과제를 작성할 때, 교수를 수신자로 하는 편지 같은 레포트를 쓰지 말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라고 했다. 최소한의 의무교육을 받았다면 이해할 수 있도록 명백하고 가독성 좋은 글을 쓰라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표현은 참신해야 하고 깊이가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샷 추가한 디카페인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문장이 빤해지고 흔해지면 오히려 집중력을 잃어 글이 안 읽힌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모두가 각자의 수준에 적절한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스토리의 문법은, 예를 들어 디즈니에서 자주 사용되는 종류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실수로 원래 있을 곳에서 멀어진 기쁨이와 슬픔이가 우여곡절 끝에 집에 오는 여정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보기에는 기쁨과 슬픔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사건이 점점 늘어나며 마음이 성장하는 일, 유년기와 멀어지며 성숙하는 일을 다룬,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두 해석 모두 원래의 의도에서 왜곡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모든 독자가 오해 없이 향유하되 각자의 수준에 따라 이해의 깊이는 다를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많은 어른들이 성인이 되어 <어린 왕자>나 <모모>를 다시 읽으면 느낌이나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그냥 개인적 취향인데, 구체적인 사실이나 배경, 사물의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심리 묘사가 잘 와닿는다. 예를 들면 어떤 방을 설명할 때, 환경에 대해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먼저 서술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어둡고 축축한 방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물건들의 냄새가 훅 밀려왔다. 왠지 이 방에 있었던 사람은 서럽고 외로운 기분을 많이 느꼈을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콕 찔려왔다.'로 문단을 시작하는 것이 나의 이해를 돕는다. 반면 '덜 마른 걸레가 방 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 희미하게 격자무늬가 보였고 적색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라는 표현은 읽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날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묘사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글에 있어서는 귀납법보다는 연역법이 좋다.


무엇보다도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문체는, 내가 상황에 푹 빠지게 만드는 글이다. 소설이나 수필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1인칭 서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글을 잘 썼다는 생각도 안 든다. 이미 너무 몰입해있기 때문이다. 연기자에 대해서도 비슷하지 않나. 너무 연기를 잘 하면 와 이 사람 연기 잘한다, 하는 생각도 못 하고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린다. 오늘 읽은 <아홉수 가위>도 나를 순간 주인공으로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그런 글을 읽고 겨우겨우 감정에서 빠져나오면 비로소 와, 내 취향으로 정말 잘 쓴 글이었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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