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솜씨도 유전될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음감이나 손재주, 지능 등은 어떤 식으로 유전자에 새겨지는지 직관적으로 감이 오는데, 음식을 만드는 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는 재능보다는 숙련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분야로 보였다. 똑같은 레시피를 가지고도 누구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고 누구는 망치는 걸 보고 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리를 직접 자주 하다 보니 요리에도 재능의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간이나 맛의 조합에 대한 감이다. 나는 요리를 하다 뭔가 부족한 맛이 나면 뭘 넣어야 꽉 찬 맛이 되는지 바로 감이 오고, 남은 요리를 어떻게 활용해야 다시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느낌이 온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요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 없는 요리가 별로 없다. 하지만 당연히 내가 직업인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자신있는 요리를 찾기 위해 자신 없는 분야를 소거해보기로 한다.
먼저 나는 플레이팅이 중요한 요리는 자신이 없다. 내가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는 2015년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의 뮤직 캠프였다. 우리 동아리에는 뮤직 캠프라는 전통이 있는데, 진짜로 밥 먹고 노래하고 이야기만 나누다 끝나는 캠프다. 그런데도 일정이 빡빡해서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밥을 해준다. 당시에는 선배 중 밥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멤버 중 그나마 선배인 내가 밥팀장을 맡게 되었다. 그때 내 기분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라면이나 피자빵 말고는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고, 요리 초보자가 20인분이 넘는 요리를 4박 5일 동안 매일 해야 한다는 압박은 나의 한계를 초월했다. 처음에는 만들 음식의 레시피를 모두 적어보려고 했으나 결국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쓰고 주님 어떻게든 해주세요 라고 읽는다) 하는 마음으로 식재료만 대충 맞춰 사서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맛없는 요리로 배를 채우면 화가 나는 사람이기에, 어떻게든 맛있는 요리를 내내 해냈다. 다만 급식형 요리가 다 그렇듯 내 요리는 전부 원팬(또는 원팟)이었고, 담아낸 비주얼도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뭔가 쌓거나(수제 햄버거), 모양을 만들거나(계란말이), 플레이팅이 애초에 중요한 요리(카프레제) 등은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재료 손질이 많이 필요한 요리는 자신이 없다. 손맛은 있는데 손재주는 없는 사람이라서, 손질에 손이 많이 가면 재료가 뭉개지거나 써야 하는 부분을 날려버리기 십상이다. 뭉텅뭉텅 썰어서 넣기만 하면 되는 버섯이나 양파, 토마토까지는 괜찮다. 당근이나 감자처럼 칼로 직접 껍질을 벗겨내야 하는 재료부터는 조금 애매하다. 그래도 그건 두껍게라도 벗기기만 하면 되니까, 날아가는 속살이 아깝긴 하지만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생선이나 조개, 생닭을 만나면 멈칫하게 된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요리사의 재능은 없는 것 같다. 맛을 내는 재능과 재료를 다듬는 재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서, 나는 처음부터 장을 볼 때 웬만하면 손질된 재료를 구매한다. 토막닭이나 분쇄육, 손질 당근과 껍질 깐 밤 등, 요즘 온라인에는 나같이 손재주 없는 사람을 위한 식재료가 얼마든지 있다.
결국 내가 자신 있는 요리는 주재료 손질이 쉽고, 볶아서 원팬으로 내면 어떻게든 구색이 갖춰지는 요리로 좁혀진다. 패기 있게 글을 시작한 데에 비해서는 다소 소박한 결론인 듯하다. 닭볶음탕이나 제육볶음, 부대찌개를 거쳐 감바스, 심지어는 뵈프 부르기뇽에 이르기까지 한 팬에 뚝딱 만들 수 있는 종류는 대부분 잘한다. 최근에 발굴한 요리는 차돌 떡볶이와 소고기 미역국이다. 진짜 끝내주게 완성한 레시피이기에, 내 친구들은 우리집에 놀러올 때마다 호사(?)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