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44_ 빛 속 어둠이거나, 어둠 속 빛

by 벼르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두 부류다. 첫 번째 부류는 두부같이 생겨서 순둥하고 잘 웃고, 밝고 맑은 귀여운 애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웃음으로 승화하는, 조금은 삐딱한 구석이 있는 친구들이다. 친구들의 분포를 살펴도 전자 반 후자 반에, 몇몇 예외적인 친구들이 존재한다. 나는 외면은 전자에, 내면은 후자에 가까워서 전자의 친구들과 물에 물 탄듯 섞여 다니고 후자의 친구들과 광기를 공유한다. 그런데 최근에 재미있는 경향성을 발견했다. 전자의 친구들은 내가 자기들을 좋아하는 걸 그러려니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주로 가시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몰려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두부들이다. 그런데 후자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내 인간관계에서 예외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 삐딱하고 웃긴 친구들끼리는 서로 교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친구들이 내 인간관계의 절반에 가깝다는 건 그들은 모른다.


두 부류의 친구들에게 나는 서로 다른 이유로 반한다. 보통은 하나의 무리(학창시절에는 대부분 학급, 지금은 소속된 집단 구성원) 안에서 앞의 두 부류에 가까운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남지만, 가끔 그 극단에 있는 사람을 보면 보다 적극적으로 치이기도 한다. 두부 중의 두부, 아니면 어딘가 어둡지만 치명적으로 웃긴 사람. 둘 모두에게 나는 불도저처럼 들이대는데 막상 성공하는 쪽은 후자뿐이다.


두부 중의 두부, 연두부들은 겉모습부터 몽글한 아우라를 풍긴다. 연예인으로 따지면 박보영이나 소희 쪽이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있으면 어딘가 초식동물 같은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 표정이 나에게는 치명적으로 귀엽게 느껴져서 자꾸 바라보게 된다. 그 친구들이 내 시선을 눈치챌 정도가 되면 이미 게임 오버다. 내 마음은 이미 홀랑 넘어갔지만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이미 내가 부담스럽다. 그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그 친구들은 있는 힘껏 도망간다. 그렇기에 관계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발전되긴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괜찮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도, 연두부들은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연에인들이 대부분 연두부들인 것 같다. 지금 내 주변의 두부들은 내가 들이대기보다는 같이 지내다가 스며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블랙 코미디의 정수들은 얌전해 보이는데 눈빛이 왠지 맹수처럼 반짝이는 구석이 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웃긴 말을 툭 내뱉을 틈이다. 그들은 딱히 집단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거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발언하지 않는다. 그냥 누군가는 웃기겠거니 하고, 더 중요한 건 자기들이 재미있으려고 발언한다. 굳이 연예인 중에 찾자면 오마이걸 미미나 문명특급의 재재가 이쪽에 가깝다. 문명특급 오마이걸 편에서, 재재가 입을 열 때마다 아린이 숨 넘어갈 듯 뒤집어지게 웃는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이쪽은 반해서 들이대도 어느 정도는 가망이 있다. 그들의 개그에 진심으로 열렬히 웃고(절대 비위를 맞춰주려는 듯한 빈 웃음은 안 된다. 이 유형의 인간들에게 절대 안 통한다), 또 내가 충분히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내면 된다. 운이 좋으면, 그리고 내 개그 코드가 그들에게 통하면 그들의 세상에 편입될 수 있다. 그러면 드러난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들의 내밀한 세계는 훨씬 엉뚱하고 웃기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두 부류로 나눴지만 내 세상을 이루는 사람들은 이런 양극단의 사람들이 만드는 스펙트럼이다. 어떤 두부는 사실 속으로 굉장히 삐딱하고, 어떤 블랙 코미디언은 까보면 굉장히 물렁하다. 중간 조도로 밋밋한 사람들보다는, 밝음과 어둠이 번갈아 나타나는 사람에게 나는 주로 반한다. 그러니까 낮에 숲에 누우면 빼곡한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마구 들이치는 광경 같은 사람이 좋다. 내가 먼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가끔은 직진하는 데 실패하지만, 절반의 성공률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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