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빼고 다 재미있다는 감정을 나는 재수학원 때 처음 경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도 공부는 재미있었는데 수업시간이 정말 몸이 뒤틀릴만큼 재미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입시 결과에 우리보다 목숨을 건 선생님들 덕에 자습시간이 많이 부여되었다. 그런데 재수학원은 수업시간에 맞는 진도 외의 다른 책을 펼쳐놓기만 해도 크게 혼이 났다. 애써 수업을 들으면서 공책 구석에 몰래, 그리고 자주 그리던 그래프가 있었다. 선생님들을 웃긴 정도로 구분하는 그래프였다. x축은 웃기려고 하는 의도성, y축은 실제로 웃긴 정도를 반영했다. 그러니까 (5, -3)에 해당하는 선생님은 웃기려는 의도는 짙은데 전혀 재미가 없는 선생님이었고, (-7, 6)에 해당하는 선생님은 웃기려는 의도는 전혀 없는데 좌중은 뒤집어지는 그런 선생님이었다. 제1 사분면이 가장 즐겁고, 제2 사분면은 어딘지 안쓰럽고 제3 사분면은 무미건조하고 제4 사분면의 선생님들은 영문을 모르고 사랑받았지만 막상 본인이 즐거워보이지 않아서 나중에 돌이켜보면 별로였다.
유머와 위트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유머는 의도성이 짙다고 생각한다. 위트도 의도성이 있지만,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고 해서 위트가 실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 유머는 아무래도 실패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머보다는 위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을 계속해서 빵빵 터뜨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가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고 농담을 던지고는 한다. 그러나 위트는 사회적 센스에 가까워서, 던져야 할 때를 제대로 안다.
사실 개인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위트가 좀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몇 년 전 BBC 생방송 중 아기가 걸어들어와서 화제가 되는 걸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후속 인터뷰도 진행하고 하나의 유쾌한 에피소드로 지나가는 걸 보고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징계감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좀 덜 진지할 땐 씨익 웃고 지나갈 필요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