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감히 세월호 유족의 마음을 반의 반이라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만 보내주라고, 시간이 약이지 않냐고,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들이 그토록 폭력적인 줄 나는 몰랐다. 내가 아직 보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데, 그 약 먹고싶지 않다는데, 여기 주저앉아있고 싶다는데 당신들이 뭘 아냐고 윽박지르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다.
5주기 즈음이었나, 내 동생의 친구가 페이스북에,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왜 아직도 추모로 유난을 떠냐는 식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카톨릭에서 2천년 넘게 기념하고 있는 예수의 수난, 자기 집에서 몇십 년이 넘게 명절마다 조상님을 기억하는 제사에는 시비걸 생각을 못하면서 10년도 안 된 세월호 추모에 시비를 거는 게 유치하고 치사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공격할 생각만 했지, 그런 말을 시시각각 마주치며 유족이 받을 실시간의 상처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연대감을 원해서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찾아오는 분노, 무력감, 우울, 슬픔, 자조, 비난의 소용돌이는 나를, 타인을, 서로를 겨누다 모두를 상처입힌다. 연대해야 할 사람끼리 서로를 비난하면 원래는 있는 대로 상처받았는데, 이제는 나는 이해한다. 저 사람도 혼란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납득한다. 아마 상대방도 나에 대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글은 유난히 방향성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말 한 가지는, 우리에겐 기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을 잊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기억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연대를 보낸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당할 폭력을 가늠하고 함께 마음아파한다. 적어도 계속 기억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잊으라는 말만 너무 크게 들리지 않게, 계속 기억해도 된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하고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