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48_ 빛날 수 있다면

by 벼르

사랑과 스트레스, 위기감은 나에게 돈을 쓰도록 한다. 단순히 어디에 돈을 많이 쓰느냐의 문제가 아닌,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돈을 쓰는 순간을 떠올리면 모두 그 세 가지와 관련되어 있다.


타인을 빛나게 하기 위해 돈을 쓴다. 나는 아무래도 사랑할 때 돈을 아끼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을 웃게 만들 것 같으면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큰돈을 턱턱 쓴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짝꿍에게 했던 가장 큰 선물인 플레이스테이션도 그렇고, 그에게 멋지게 잘 어울리는 회색 코트도 그렇고, 내 물건을 살 땐 가격과 품질의 타협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땐 이상하게 그 타협이 흐려진다. 이걸 살 바엔 좀더 돈을 들여서 더 나은 거, 아니 조금만 더 들이면 이것까지 살 수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면 책정해 두었던 예산을 늘 초과한다.


온종일 어둡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라도 비추려고 소비할 때도 있다. 이건 특히 돈을 벌려고 애썼을 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버는 돈이 늘어나고 소비수준이 그대로인 상황은 이상적인 경우에 해당했을 뿐이었다. 나의 경우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하면서 소비를 마구 한다. 지금 생각하면 박봉이지만 130만원의 월급을 받고 인턴을 하던 시절에, 나는 내가 돈을 정말 많이 번다고 생각했다. 인턴이어도 여전히 용돈을 받았고, 그전까지 과외로 한달에 버는 돈은 8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사에서 점심도 사줬다. 그런데 퇴근길에 스트레스를 풀려고 인터넷 쇼핑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결국 버는 만큼 다 써버렸다(어디 뭘 사러 갈 시간도 없어서 인터넷 쇼핑을 했는데 그래놓고 바빠서 포장도 못 열고 몇 주가 흐르는 일도 많았다).


때로는 순간을 빛내기 위해 소비한다. 지금이 아니면 시기를 놓쳐버리는 행복에는 돈을 아끼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서 여행에서 한두 푼 아끼겠다고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리며 흥정하는 일행을 나는 견디지 못한다. 한도 끝도 없이 여행지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귀국하면 생각나는 건 순간을 꽉 채운 기억일 텐데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써서 돈을 아낀다. 숙소에 택시를 타고 10분만에 돌아가서 쉬고 노느냐,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가느냐를 두고 일행과 크게 싸운 이후 그냥 성향 차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보다 소비가 조금 늘더라도 순간을 빛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빛을 내려고 하는 소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연료(돈)가 없으면 어차피 불태울 수 없다. 요즘은 늦봄과 한여름의 불꽃놀이를 위해 땔감을 모으고만 있는 나날이라 여러 모로 애쓰고 있다. 사랑은 다른 방법으로 주고, 마음은 최대한 어둡지 않게 지켜내고, 소비 없이도 빛을 내는 하루하루의 순간을 찾아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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