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교실에는 급훈이 있었다. 지금도 재치있거나 의미있는 특정 학급의 급훈이 인터넷에서 종종 화제가 되기도 한다. 사실 특별히 재미있거나 선생님 입장에서 유의미하다고 해도 급훈이 취향이 아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과는 상관없이 칠판 옆에 붙은 급훈을 종종 쳐다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왜 저런 급훈을 정하게 되었을까, 그 마음을 짐작하려 해본 적도 있다. 그 시절에는 사실 좌우명이랄 것도 없었다. 좌우명이 있는 누군가가 멋있어 보였을지언정, 결국 내가 따라야 하는 건 내 소신이 아닌 규칙과 어른들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내 인생을 내가 만드는 나이가 되었고, 가끔 나는 급훈처럼 종종 바라볼 수 있는 문장을 찾아 헤매고는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게 내 좌우명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은 없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자주 사랑에 빠진다.
다만 최근엔 어떤 문장과 사랑에 빠졌니,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몇 문장은 있다. 최근에는 김영민 작가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좋았다. "선생이 되고 나서 공부를 지나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왜 그토록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공부하는 순간이 좋아서요. 오, 그런가. 이 대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영광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요즘 자주 쳐다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 추구하는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좇는 일. 어떤 목표 지점만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시시하니까 말이다.
사실 내가 좌우명을 정하는 것보다는 좌우명이 나를 찾는 것 같다. 최근에는 완벽히 똑같은 문장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비슷한 문장에게 끌린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되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받아들이라는 요지의 문장들이다. 삶의 어느 시점에 계속해서 머리를 맴도는 어떤 모토 같은 문장이 있으면, 그 문장이 구체화된 모습을 드러낼 때 이것이 나의 요즘의 모토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