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사람이 많다는 핑계로 독서 대신 게임을 한다거나,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기 귀찮을 때 진짬뽕을 먹는다거나 하는 흔한 길티 플레저를 즐기는 나지만, '길티 플레저'라고 했을 때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건 mbti이다.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 결과로 사람을 나누어 분석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몇 년째 불타고 있다. 다른 사람이 mbti에 과몰입한다고 하면 그저 유행에 탑승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나는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왠지 좀 guilty하다. 내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은 모두 mbti의 유행을 극도로 싫어한다. 교수님한테는 말도 못 꺼내봤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mbti 유형 검사를 싫어하는 건 슬프게도 당연할 수도 있다. 일단 검사를 만든 사람들이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현대판 순혈주의인가, 마음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사실 나도 심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척하는 꼴을 보면 보기 싫으니까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심리학자 카너먼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처럼, 다른 분야의 사람도 맞는 말을 할 수 있는게 아닌가 남몰래 생각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동료들한테는 절대 못 하는 말이다. 그리고 학계와 채용 분야에서 성격 검사의 대세는 Big Five로 넘어간지 오래다. 그 이유는 이렇게 배웠다. mbti 검사에는 네 개의 축이 있어서 I 아니면 E, T 아니면 F 둘 중 하나로 구분된다. 그런데 내가 I와 E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E 쪽으로 아주 살짝만 기울어진 사람이라면? E가 100퍼센트에 가깝게 나오는 사람과는 다른 성격을 가졌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을 딱 16가지로만 나누는 데에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Big Five 검사에서는 성격의 다섯 가지 요소에 각각의 점수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방금 OCEAN 개방 검사를 해본 건데 개방성이 100이 나오다니 당황스럽다. 그 와중에 외향성은 왜 이렇게 높게 나왔지). 아무튼 내가 어떤 유형인지 알파벳 몇 글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나는 O가 100점, C가 21점, (후략) 인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에도 한도 끝도 없이 제기되는 자기보고식 검사에 대한 문제점(객관적인 평가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대답하는 건데 검사 결과가 정확하겠냐)도 있고,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는 간이 검사의 부정확성(실제로 mbti 검사는 정식 검사가 훨씬 정확하긴 합니다)도 그렇고, 나와 전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mbti를 싫어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일단은 mbti 유형 검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 난 엄연히 성격에도 위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공식적으로는 INFP 유형에 해당하지만, N이나 F는 극단을 달리는 반면 I는 까딱하면 E로 넘어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I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장 치우쳐 있는 성격 특성을 맨 앞으로, 자기에게 제일 전형성이 낮게 나타나는 특성을 맨 뒤로 보내어 알파벳 배열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는 NFPI가 된다. 나랑 똑같이 공식적으로는 INFP 유형인 짝꿍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하면 자기는 PIFN이라고 한다. 이러니 같은 유형이어도 다양한 성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마 비전공자가 mbti를 싫어한다면 가장 많은 이유가 그 유형에 대한 설명이 자기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네 가지 특성 모두에서 중간 정도가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퍼센테이지에 편차가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자기 성격을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가끔 나와 알파벳 하나만 다른 유형인 ENFP나 INFJ에 대한 설명 글을 자주 읽고, 공감이 갈 때도 있다.
아무래도 찔리면 말이 길어지는지, mbti 과몰입을 위한 변명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mbti 유형을 분석한 글을 읽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글은 정말 재미있고 정확하게 분석해서 감탄이 나오고, 어떤 글은 너무 엉망이라 내가 다시 써주고 싶다. 이런 나의 분노 버튼은 누군가가 'mbti나 혈액형이나~'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로? 진심인가? 아마 mbti 유형 검사를 싫어한다던 전공자들도 저 말 앞에서는 나와 대동단결하고 mbti 유형 검사를 지켜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고심해서 응답한 내용에 따른 결과를 태어날 때 랜덤하게 배정되는 형질과 비교하다니.
앞서 자기보고식 검사의 단점에 대해 잠시 언급했지만, 아무래도 메타인지(자기 자신에 대해 인지적으로 아는 정도)가 높은 사람의 mbti 검사 결과가 정확할 수밖에 없다. 메타인지가 낮은 사람은 실제로 자신이 어떤지 대답하는 대신 자기가 되고 싶은 성격의 지향점에 대해 응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친구들과 서로 핸드폰을 바꿔서, 서로의 mbti 검사를 대신 해주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다섯 명이 모여 모두 서로의 검사를 해주었는데, 한 명은 자기가 한 검사 빼고 다른 사람 모두의 검사 결과가 똑같았다. 자기가 평소에 자신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 친구는 이제 자신의 mbti 유형을 바꾸었다(?). 그렇다. 나의 길티 플레저는 단순히 mbti 유형 분석 글을 읽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mbti 이야기를 하고, 어떤 유형은 어떨 것 같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관련한 농담을 던지는 것까지 포함한다. 아직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가장 친한 친구에게 검사를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해서 처음 보는 유형이 나온다면 그 유형에 관한 글도 읽어보라. 그래도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면, mbti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인 걸로. 이 글을 보는 전공자 여러분은, 그래도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고 저를 관대히 넘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