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왠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면 콧방귀를 뀌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다들 재밌다고 무언가를 보라고 열광하는 중에는 늘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내가 컨텐츠나 인물에 다가서려면 나만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걸 좋아하던 사람들은 다른 걸 좋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나는 그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하염없이 이전에 그 대상을 좋아하던 사람의 흔적만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비밀의 숲>이 그랬다. 남들 다 좋다고 난리를 칠 때는 '흐음 그렇구나~ 난 별로 안 당기는데?' 하고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시즌 1을 밤새 보고 난 뒤에는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최근에는 무언가가 내 취향일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시도는 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문제는 나는 접하는 대상을 웬만하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냥 맛만 봐야지, 생각했을 때 진짜로 맛만 보고 끝난 적은 거의 없다. 실시간으로 앓는 사람이 있는 작품을 향유하는 맛은 더욱 짜릿했다. 그렇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환승연애 2>를, <더 글로리>를 실시간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실시간으로 온갖 반응을 찾아보고, 좋아하는 장면은 보고 다시 보고 또 보고, 인터뷰까지 모조리 찾아다니며 한없이 행복해했다.
운이 좋으면 이렇게, 제때에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실시간으로 남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뒷북을 울리게 되더라도 즐기는 방법이 없진 않다. 뒤늦게 취향의 작품을 발견했으나 누군가와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하다면, 나는 친구를 졸라 그 작품을 다시 본다. 그리고 보는 동안 친구의 반응을 즐겁게 감상한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친구는 내가 추천한 작품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열렬히 시청할 것이다. 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마음으로, 반은 나도 처음부터 그 작품을 다시 보는 마음으로 설레하면서 영상을 보는 일을 나는 좋아한다.
이런 작품이 있었다니! 하면서 나중에 슬퍼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겸허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게 좋다며 영업할 때 함부로 나에게는 별로일 거라고 삐딱하게 굴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도 나에게 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래 놓고 또 내일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 작품을 영업하려 들면 나는 아마 방어적으로 굴 것이다. 타인이 얼마나 현명한지, 내 주변의 타인들이 얼마나 나를 잘 아는지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