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63_ 세상에서 제일 짜릿한 빙수

by 벼르

규칙은 절대 어기지 말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소한 규칙은 가끔의 일탈이 허용되는 범위일까? 나는 사실 규칙을 잘 못 어기는 사람이다. 지금은 이전만큼의 강박은 없지만, 예전에는 내가 선을 넘을 아주 약간의 조짐에도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중학교에 다닐 때 복도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종이 울릴 시간에 가까워지면 빨리 들어가자며 어쩔 줄 몰라했다. 한참 규칙을 어기는 데에 맛이 들릴 나이인 중학교 2학년 때는 이런 강박 때문에 친구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그런 종류의 갈등은 더이상 겪지 않게 되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 나와 비슷한 강박을 가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쉬는시간에 자리를 잘 뜨지도 않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일탈을 부추기는 친구들도, 즐기는 친구들도 없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애들이었을 것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얌전히 공부하고 노는 학교였다.


그런 우리도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조금씩 미쳐가기 시작했다. 사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식적인 방학은 한 달 반 정도였지만 자율학습 기간이 있어서 실질적으로 학교에 안 나오는 기간은 2주 정도 되었고, 그렇게 두 번을 제외하고는 매일매일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열한시까지(도중에 법이 바뀌어서 열시까지만 하게 되었지만) 남아서 공부를 해야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지만 그당시 고등학생이던 누구에게나 그랬듯 자율이 아니었다(거의 열림교회 닫힘 수준임). 학원을 다니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면제되었는데, 그 외의 사유는 인정되지 않았다. 등교 시간이 여덟 시 이십분이었으니까, 하루에 거의 열다섯시간을 꼬박꼬박 학교에서 보낸 것이다.


그러다보니 은근슬쩍 이탈자가 생겼다. 특히 금요일 밤엔 별안간 춤을 추다 야자 한두 시간을 남기고 사라지는 친구들이 있었다. 우린 그때부터 벌써 불금의 개념을 알았던 걸까. 사실 쉬는시간에 몰래 빠져나가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자감 선생님 눈에만 띄지 않으면, 어차피 학원에 가는지 몰래 도망가는지 분간이 안 갔기 때문에 경비원은 우리를 잡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허술한 경비 속에서도 전반적으로 말을 잘 듣는 애들이었다. 그리고 한 반에 삼분의 일 이상 사라지는 일과 같은 대규모 이탈이 아니라면, 복도를 도는 자감 선생님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이 자습 감독만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당시에 학습부장이었는데, 나에게 뇌물을 주고(?) 자습 때 자리에 있었던 걸로 체크해달라고 부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그래봤자 딸기우유나 나나콘 뇌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힘들면 이런 부탁을 하겠냐 반, 어차피 공부 안 하면 자기 손해지 하는 마음 반으로 대부분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시간을 수학 문제 한 문제만 가지고 끙끙대던 날이 있었다. 꽤 친한 친구 몇 명이 야자 마지막 시간만을 제끼고 빙수를 먹으러 가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다. 빙수를 먹고 자연스럽게 셔틀버스에 타면 되는 일정이었다. 나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문제 하나로 몇 시간을 앓다보니 이 답답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졌다. 결국 다른 친구에게 학습부장 업무를 떠맡기고 나도 빙수 파티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네 의자가 있고, 멜론 빙수가 있는, 그냥 그 시절의 흔한 카페였다. 이름이 '캔모아'였던가. 설빙 이전에는 캔모아가 빙수 세상을 지배했다(?). 아무튼 빙수는 맛있었다. 아니,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떻게 되었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노래방으로, PC방으로 튄 친구들이 있었는데 누구도 크게 혼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돌아가면서 조금씩만 일탈하는 애들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왜 나는 내 일탈에만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혼나고 싶었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오히려 김이 샜다. 나는 다시는 야자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죄책감이 너무 커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별 게 아니라고 느껴지니 시시해서 그랬다. 오히려 혼이 났다면 억울해서, 오기로라도 한 번 더 저지르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크게 비도덕적인 일이 아니라면 사소한 아이들의 일탈에 어른들이 눈감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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